젠가
정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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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놈 따로 있지만, 치우는 놈도 따로 있어서 굴러가는게 세상이잖아요." (p.259)

‘젠가’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아이들과 함께 하던 보드게임이었다. 교차로 쌓여진 나무 블록을 하나씩 하나씩 빼낼 때마다 점점 더 위태로워지는 나무탑은 가볍게 시작해서 스릴 넘치는 긴장감을 주곤 했다.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시작하자마자 중심이 되는 나무 블록을 빼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뜨리기도 하고, 중심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나무 블록을 빼내 게임을 싱겁게 만들기도 한다.

JTBC의 핫한 드라마 허쉬의 원작 소설가 정진영의 신작으로 주목받은 “젠가”는 기자 출신 작가의 날카로움을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지방 소도시에 위치한 대표기업이 무산될 뻔한 계약을 살리기 위해 저지른 부조리가 보드게임 젠가의 나무 블록처럼 하나씩 하나씩 세상으로 민낯을 드러낸다.

스스로가 살기 위해 나보다 힘이 약한 누군가를 밟고 지나가야 하는 정글 같은 조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철저한 학연과 지연으로 스스로의 조직을 공고히 다지고,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진실을 밝혀야 하는 언론매체들은 따뜻한 무관심을 요구하는 광고주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가상의 지방 중소도시 고진시를 배경으로 고진시의 대표 기업 내일전선을 중심으로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부조리를 고발한다. 상급자에 의한 성추행과 공공연히 행해지는 하청업체에 대한 횡령 그리고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행되는 위조!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우선 덮을 방법을 찾는다.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 '지금' 그리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 영화를 보면 말이야, 최민식이 이런 말을 해. 조직은 키워 줄 놈한테 절대로 피를 묻히게 하지 않아." (p.21)

고진시의 거대 기업 내일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업무능력이 아니다. 단지, 고진시에서 태어나 고진고와 고진대를 나온 소위 말하는 '고진 순혈주의자' 여야만 한다. 이른바 내일전선의 성골로 불리는 이들은 그들만의 영역을 만들며 결속력을 다져간다. 그러던중 불미스러운 성추행 사건으로 다음 진급을 앞둔 내일전선 성골의 진급을 방해하는 작은 틈이 생기고,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한 소위 말하는 진골의 추격이 시작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말 못 들어봤어? 어쩌면 오늘의 만남이 새로운 시작이 될지도 모르지." (p.64)

욕심은 욕심을 부르고, 무책임한 욕심은 급기야 끝자락에 있는 어느 누군가의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다. 시민들의 알 권리를 가장한 언론의 보도는 결국 살아남기 위힌 방편일 뿐이며,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일뿐이다. 견고하지 못한 약자들의 성은 작은 충격에도 힘없이 무너지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직장내 부조리,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쓰여지는 현대판 골품제 거기에 더해진 언론과의 유착!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너무나 만연해 있는 스토리인 탓에 몰입감이 끝내주는 소설이었다. 덕분에 허쉬에 이은 드라마 제작을 기대하게 된다.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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