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센스 노벨
스티븐 리콕 지음, 허선영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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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스(nonsense) 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평범하지 아니한 말 또는 일.(네이버 국어사전)


짧은 8개의 단편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기묘하고 웃긴 코미디가 아니라 비꼬는 듯한 시대상을 담은 코미디를 본 기분이다. 아무래도 북유럽 감성을 따라가기에는 내가 너무 촌스러운 구석이 있나 보다. 저자 스티븐리콕은 활동할 당시 최고의 유머작가로 평가되고 있는데, 내가 북유럽식 유머코드 보다는 시대적 블랙코미디의 느낌을 받는 건 절대적인 세대차이(?)가 아닐까 싶다. 이전에 읽었던 '어느 작은 도시의 유쾌한 촌극'은 읽으면서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는데 아무튼 글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1 여기 해초에 묻히다

광활한 바다를 항해하면서 해적들이 숨겨둔 보물을 독차지하기 위해 선원들을 하나씩 하나씩 바다로 빠뜨려버리는 선장과 그 사실을 알고도 선장의 범죄에 동조하는 항해사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끔찍한 결말. 이야기의 끝자락에는 피식 웃음이 나온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는 이름을 가진 빌지 선장과 허풍쟁이라는 이름을 가진 블로우하드 항해사와 꼭맞는 맞춤형 블랙코미디다.


@2 넝마를 걸친 영웅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자리를 구하는 부랑자 헤이로프트가 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열심히 일자리를 구할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다가 바른 삶을 포기하고 범죄의 길로 들어서자마자 세상 사람 모두가 그를 우러러보며 돕는다. 어이없게도 부랑자 헤이로프트는 범죄로부터 새출발의 기회를 얻어 대도시의 재력가가 된다는 살짝 허풍같은 스토리다. 어허! 갈수록 북유럽 감성이 어려워진다.


@3 어느 순진한 여인의 슬픔

부자집 영애가 멀쩡한 약혼자를 두고, 강가의 사기꾼에게 홀딱 넘어가 전재산을 갖다 바치고 도주의 계획까지 세운다. 천운으로 멀쩡한 약혼자가 사기꾼을 혼쭐 내고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지만 철부지 아가씨는 끝까지 사기꾼을 두둔한다. 이런!


@4 무너진 장벽

두쌍의 부부가 이혼을 위해 각기 다른 배를타고 여행을 떠난다. 두둥! 운명의 장난처럼 두쌍의 부부가 탔던 배가 동시에 조난당해 같은 무인도로 떠내려오고, 이번엔 서로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짝이되어 심지어 서로가 호감을 가진채 무인도 생활을 이어가다 우연히 마주치지를 않나... 심지어 만화처럼 본래의 배우자에게 새삼 반해 재결합을 하기까지! 끝까지 평범함이란 있을 수 없다.


@5 하일랜드 아가씨 해나와 오처라처티 호수의 저주

가재를 잡고 있던 하일랜드 아가씨 해나가 낯선 젊은 지주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헤프닝은 초반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어질 수 없는 원수집안의 운명적 만남인가 싶더니, 두 남녀의 동상이몽우로 해묵은 갈등을 불운으로 마무리하는 코미디로 변해 있다.


@6 누가 범인일까

브로드웨이를 점령한 신문사 플래닛사 국장 스록튼에게 전해진 사건! 사교클럽 회원이 세번째 살해를 당했다. 심지어 살해당한 키버스 캘리는 전날밤 스록튼과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그가 집으로 바래다 주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스록튼은 근간 미궁에 빠진 사건을 훌륭히 해결하고 있는 신입기자 켄트에게 취재를 의뢰하고, 그는 출중한 추리실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듯 했으나... 난센스 노벨 플롯에 충실히 기막힌 반전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8편중 제일 맘에 드는 단편이었다.


@7 캐롤라인과 불사조 아기의 크리스마스

평생 충실한 농부로 살고 있는 앤더비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달갑지 않다. 무리하게 받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크리스마스를 기해 농장과 저택이 압류될 예정이다. 큰 돈을 벌겠다고 도시로 나간 큰아들과 교도소에 있는 작은아들... 이들 부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추위에 떨며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받아들인다. 마지막 하루일지도 모르지만, 신께서 이런 선한 부부를 돕는 건지 극적으로 '돈' 문제는 해결되지만, 인간의 민낯 또한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불사조처럼 엄마품으로 돌아오는 클스마스 베이비와 함께 진정한 블래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8 석면 옷을 입은 사나이

다가올 미래를 경험하고 싶은 작가가 일장춘몽처럼 아니 악몽처럼 겪어버린 먼 미래 정복의 세계. 그곳은 일상을 소거해버린 많은 사람들이 석면 옷을 입고 무표정으로 살아간다. 미래 정복세계는 그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회색도시 안에서 먹는 것도, 일도, 심지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다. 과거에서 넘어온 그에게도 미래세계의 석면을 입은 사내에게도 서로의 일상은 끔찍하기만 하다.

"하지만 당신들은 곧 기계가 쓸모 없음을 알게 됐습니 다. 기계가 좋아질수록,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원했지요. 삶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습니다. 당신들은 힘겨워 소리를 질렀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스스로 만든 기계의 톱니바퀴에 갇혀버린 거지요.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p.204)​


짧은 단편들이 제각기 다른 불합리한 인간의 군상을 묘하게 비틀어 꼬집는다. 유쾌한 코미디, 유머라기 보다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웃음을 이끌어 내는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센스라는 제목을 강조하듯 평범하지 않은 독특힌 소재와 구성으로 유머 코드와는 색다른 흥미를 유발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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