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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이제 곧 천사는 '최후의 레시피'라는 주문에 의해 봉인에서 풀려나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겠지.
이윽고 천사는 증식에 증식을 거듭하여 세상 구석구석까지 날아갈 게야.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되어온 이 인간 세상을 뿌리부터 바꿔버리게 될 테지.
스노우 엔젤 p.17
눈 그리고 천사, 한없이 순수한 그들이 만나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쾌락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지금껏 경험했던 '마약'을 소재로 했던 범죄소설과는 양상이 다르다. 마약에 찌든 중독자와 판매상 그리고 그들을 쫓는 형사로 이루어진 삼각관계의 구성이 아니다. 세상을 지배하려는 자와 그를 막으려는 자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완벽한 합성 물질 '최후의 레시피'를 두고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있다. 눈앞에 펼쳐진 평온한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노인과 그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한 남자. 노인은 모든 감정에서 해방된 순수한 평온을 읊조리며 총성과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이어진 장면, '천사님, 도와주세요!'를 외치며 9층 난간에서 몸을 날리는 사람들. 약물에 중독되어 극단적 선택을 한 듯 보이지만 형사 진자이는 사건들에 의문을 품고 파트너 쇼코와 수사를 이어간다.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사건 속에서는 진자이는 함정으로 인해 쇼코를 잃고 다섯 명을 무참히 살해한 범죄자가 되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추기에 이른다.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 유령 같은 무의미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전직 형사 진자이 앞에 그의 복수심을 자극하는 마약 단속반 마토리 미즈키 쇼코가 등장하고, 그녀는 진자이에게 함께 스노우 엔젤 찾기를 제안한다.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스노우 엔젤을 찾기 위해 마약범죄 현장에 뛰어들지만, 사실은 거대한 음모의 꼭두각시였음을 알게 된다.
국가의 재정을 빌미 삼아 쾌락의 천국을 만들어 민중을 지배하고 싶은 자. 공익이라는 가면을 쓰고 민중을 지배하기 위한 음모를 서슴없이 만들어 내는 위정자들.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어쩌면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설정인 탓에 몰입감이 높아진다. 궁극의 범죄자는 평생을 바쳐 궁극의 은총을 발견한 학자도,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완벽한 약물을 사고 파는 범죄자도 아닌 이들이 아닐까 싶다.
"야쿠자가 팔면 중독물질이지만, 나라님 보증이 있으면 기호품이란 말씀이야. 도박도 그렇잖아? 야쿠자가 하면 도박판, 나라님이 하면 레저산업이야" (p.309)
마지막장을 넘길 즈음에는 나는 '왜 사나?'라는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사나?'라는 질문에 곧바로 그리고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대답할 수 없는 삶의 이유로 인해 허락되지 않는 쾌락의 세계를 탐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리 완벽한 레시피라도 단단한 삶의 벽을 깨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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