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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여행 - 방랑가 마하의
하라다 마하 지음, 최윤영 옮김 / 지금이책 / 2020년 9월
평점 :
"우연한 만남과 새로운 발견을 위해 오늘도 어슬렁어슬렁"
'어슬렁거리다' 대략의 뜻은 알고 있지만, 정확한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네박사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한다. 몸집이 큰 사람이나 짐승이 몸을 조금 흔들며 계속 천천히 걸어 다니다를 이르는 어슬렁거리다의 어근. 천천히 흔들흔들. 어슬렁이 주는 의미는 순도 높은 여유로움이라 할 수 있겠다. 바쁜 일상으로 항상 종종거리며 다니는 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나 역시, 늘어져 있는 아이들을 질타할 때마다 부정적 의미로 쓰곤 했던 단어다. '어슬렁'이라는 단어가 주는 편안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한 달은 약속된 일정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바쁜 한 달이었다. 문자 중독처럼 책을 읽는 습관 탓에 침대 머리맡에 항상 3~4권의 책이 쌓여 있다. 기분에 따라서는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기도 한다. 여유가 끼어들지 못할 만큼 빡빡한 일정 속에서 가볍게 책을 읽는 시간은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되고 했다. 바쁜 일상을 조각 내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겐 '어슬렁'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잠깐의 어슬렁도 허용되지 않았던 바쁜 시간에 만난 방랑가 마하의 어슬렁 여행은 잠깐의 여유와 함께 어슬렁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
극기 훈련처럼 여행을 다니곤 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부지런히 걷고, 사진을 찍고, 맛집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여행의 기억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추억을 만들지도, 휴식의 갖지도 못하는 노동(?) 같은 여행이 되고 만다. 저자 방랑가 마하는 나의 극기훈련과 비교되는 여행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늘 어슬렁거리는, 이동 집착에 빠진, 방랑가,,,'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 하나하나에서 뼈 속 깊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부럽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탓에 나 또한 에너자이저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하는데, 저자가 듣는 '참치 같다'라는 의미와는 아주 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같은 부산함이지만 고단함과 즐거움이라는 극단의 의미를 품고 있다. 왜 나는 나를 위한 부산함에는 인색할까,,, 인생 별거 없는데 너무 고단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소 접할 수 있던 여행에세이와는 사뭇 다르다. 여행지의 생동감 보다는 방랑가 마하, 그녀의 참치같은 생동감과 자유로움에 눈길이 머문다. 드문드문 담겨있는 거친 삽화를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깊어가는 가을 어슬렁어슬렁 흔들거리는 여행을 부르는 에세이 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