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코붱(김연정) 지음 / SISO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사랑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낫습니다." (p.44)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길치인 내가 운전하면서 쉼 없이 듣는 말이다. 내비게이션님께서 알려주시는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라도 하면 예쁜 언니께서는 상냥한 듯 앙칼진 목소리로 말한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경로를 재탐색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밀려오는 긴장감에 조바심을 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익숙해져서 '어서 다른 길을 안내하거라~' 하는 심정으로 다음 안내를 기다린다. 길은 세상 어디로든 통하게 마련임에도 정해진 길이 아니라는 것에 왜 이렇게 조바심을 내곤 했는지 모르겠다.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는 일에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다. 나 또한 이제 막 성년이 된 아이에게 스스로의 인생을 탐색할 시간을 주지도 안은 채 빨리 자리를 잡으라고 다그친다. 내가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이제 경우 자유의 맛을 보고 있는 아이에게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이야기만 전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힘든 곳이라는 숨 막히는 말과 함께 말이다.

퇴사 후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백수라는 타이틀을 갖지 않은 사람도 시간에 쫓기듯 살고 있는 삶에서 잠시라도 떨어져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행복하자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열심히 산다는 이유만으로 소소한 행복은 바라보지도 않는다. 오로지 열심만을 외치며 나를 다독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열심히 달리기만 하다가 어느 한순간 주저앉아버려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앞만 보고 달린다.

스스로 선택한 백수의 삶을 공유하면서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나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지조차 알지 못하겠다. 철이 들었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부터 '나'로 살고 있기보다는 부모님의 자식으로, 회사의 직원으로 이제는 아내, 엄마라는 자리까지 더해서 나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기 위해, 월급루팡이 되지 않기 위해, 현모 양처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나의 행복은 저 멀리 뒤로 밀어둔 채 말이다. 지금껏 자랑스러운 자식이 아니어도 일 잘하는 직원이 아니어도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아니에도 나라는 존재만으로도 완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용기를 준다. 지금껏 잊고 있던 내가 행복하고 스스로 단단해져야 내가 있는 곳곳이 행복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오르게 해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건 딱 하나다. 바로 다른 사람의 삶을 욕망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다. 이것만 있다면 백수의 삶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사표를 던질 용기는 없지만, 가끔은 경로를 이탈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정해진 삶이 항상 옳은 삶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비록, 꿈꿔왔던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꿈꾸는 삶을 살아보고 싶게 해주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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