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식당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2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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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붙잡아 매어 내 옆에 두려고 하는 사랑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존재에게 자유를 주었을 때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p209)

제목, 청소년 소설을 보강한 글이라는 소개 글 그리고 초승달 끝에 걸린 여우를 보여주고 있는 표지를 보고 여우가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쯤으로 여기고 가볍게 읽기 시작한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에는 애달픈 사연을 짐작하지도 못한 채 가볍게 읽기 시작한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묵직한 글이다.

이승과 저승 중간계의 여우 서호로부터 따뜻한 피 한 모금의 대가로 생과 사의 경계,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아닌 상태로 이승에서의 49일을 마무리할 시간을 제안받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도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져야 하는 사람에게 남은 미련이야 말해 무엇할까 싶다. 물론,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은 도영과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죽음을 맞은 사춘기 소년 왕도영과 호텔 셰프 이민석은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 만난 구미호 서호의 제안으로 49일의 시간을 얻게 된다. 사랑과 집착의 그 어디쯤에 있던 사람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이민석은 서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가족에게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도영은 49일의 시간이 마뜩지 않다. 그저 빨리 모든 것을 잊고 싶을 뿐이었다. 선물처럼 주어진 49일의 시간을 살아보기 전까지 말이다.

도영과 민석은 이승에서 주어진 49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구미호 식당'을 열게 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잊기 전 꼭 한번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며 따뜻한 음식으로 정에 굶주리고, 세상의 풍파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한다. 어느새 그곳의 핫플이 된 구미호 식당. 아직은 세상에 미련이 남은 도영과 민석은 미련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런지...

산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기도 하고 영혼의 안식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음식 '크림 말랑'이 곳곳에 등장해서 얽힌 실타래를 풀듯이 서로가 이어진 사람의 마음을 풀어준다.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고, 아픔을 달래기도 한다. 오해로 가득 찬 미련을 남기고 세상을 등질뻔한 순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본 모습은 뒤틀린 마음으로 인한 오해였음을 알게 된다.

"형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그때 보고야 말았다. 형 눈에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을. 십오 년 동안 형제로 살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서로 통하는 줄 하나를 엮고 살았을 수도 있다. 서로 미워하면서도 말이다. 나는 형 눈을 보고 그걸 알았다." (p.220)

동양에서는 사후 49일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인간이 사는 동안 저지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기도 하고, 영혼이 되어 삶을 정리하기도 하는 등 49일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하고, 사망 후 49일째 되는 날 사십구제를 지내고 영혼과 이별하는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아마도 산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에게 이별을 위한 시간을 주고 싶은 무의식이 만들어 놓은 의식이 아닐까 싶다. 우연처럼, 지인의 장례식에 가는 길에 읽게 된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결코 가볍지 않은 관계에 대한 무게가 묵직한 상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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