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웃는 숙녀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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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여럿 읽어 봤지만, 니카야마 시리치의 비웃는 숙녀 시리즈의 악녀만큼 예측을 불허하는 악녀는 없었던 것 같다. 반전의 제왕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짙은 푸른색 장미에 둘러싸인 한 여자, 커다란 모자에 가려진 모습. 비웃는 표정이라기보다는 무표정한 모습의 첫인상이다. 숨겨진 얼굴로 감추고 있는 비밀은 무엇인지.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기 전부터 묘한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요즘 부쩍 흥미롭게 읽고 있는 이야미스 미스터리. 일상 속의 미스터리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인간의 이기적이고 어두운 면을 소재로 다룬다. 인간의 심리를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는 탓에 예상하지 못했던 악행으로 인한 불편한 여운을 남기곤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노노미야 쿄코입니다."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악연은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교묘히 자극하고 종국에는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희대의 악녀 노노미야 쿄코가 노리는 것은 돈도 복수도 아니다. 그녀는 단지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이 목적이다. 게다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의 욕망을 들춰낼 뿐이다. 직접 손을 더럽힌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이 양심적이라 느껴질 만큼 그녀의 악행은 최악을 지향한다. 다만, 아무도 그녀를 벌할 수 없다. 고요한 수면을 헤집어 놓듯 범죄를 실행에 옮기고 세상을 희롱하며 유유히 현장을 벗어난다.

"마치 메뚜기 같다고 생각했다. 한 지역을 습격해서 농작물을 마구잡이로 먹어치운 뒤 또 다른 곡창 지대로 이동한다. 노노미야 쿄코아 아카리의 수법은 그런 메뚜기 떼와 꼭 닮았다." (p.252)

미모의 투자 자문사를 가장한 노노미야 쿄코는 최종 보스 야나이 고이치로를 향해 움직인다. 수족을 자르듯 그의 주변 인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간다. 불법 선거자금을 모으며 정치인의 비서로 비상을 꿈꾸는 여성 사회활동 추진 협회 사무국장 후지사와 유미의 출세욕을 시작으로 절묘하게 이어진 욕망을 끄집어 낸다. 단지 자신의 쾌락을 이유로 타인의 인생을 농락한다.

"세상에 쾌락을 위해 살인하는 부류가 존재하듯 쿄코라는 여자는 쾌락을 위해 계획을 짜내는 인간이라 할 수 있었다. 특별한 동기도 없고 상대에 대한 증오도 없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삶과 생명을 앗아가고 목적을 달성하면 아이가 새 장난감을 찾듯 또 다른 사냥감을 찾기 시작한다." (p.401)

그녀의 다음 타깃이 어떤 욕망을 드러낼 것인가의 궁금증 덕분에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장이 순식간에 넘어간다. 노노미야 쿄코의 정체가 점점 미궁속으로 숨어든다. 새 장난감을 찾으며 자신의 손바닥위의 세상을 조롱하듯 비웃는 그녀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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