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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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경고한다. 이 책은 '읽으면 안 된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해설'부터 읽은 독자는 자신의 행운에 감사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지금 당장 책을 덮고 이 책에서 멀리 떨어지기를 권한다." (p.233)

지금은 이사를 많이 다니지 않지만 어릴 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를 자주 다녔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임대차 보호법도 없었던 때라 집주인의 막무가내 횡포도 적지 않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아무튼 빈번한 이사 중에도 어른들이 잊지 않고 확인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손 없는 날' 이었다. 이사하기 좋은 날씨와 시간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 가는 방향과 손 없는 날을 먼저 따지는 지금 생각해도 합리적이지 못한 미신이었다.

마리 유키코의 이야스미 미스터리 장르인 이 책은 이사하면 떠오르는 손 없는 날을 비웃던 어린 시절의 나를 겁주려는 듯 확인되지 않은 곳으로 움직이는 이사를 공포스럽게 묘사한다.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지는 6명의 이사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곳에는 늘 아오시마 씨가 등장한다. 사신 아오시마 씨와 마주치는 순간 죽음의 그물에 걸려들고야 만다.

옴니버스 형식의 6가지 단편 보다 작품 해설을 가장하고 독자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작품 해설을 읽을 때 훨씬 더 괴기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마치 등 뒤에서 사신 아오시마 씨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온다.

범죄자가 살았던 집으로 이사한 기요코는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고 하루라도 빨리 이사하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이사할 집을 찾으러 다니며 알 수 없는 구멍에 이끌리게 되는 첫 번째 단편 '문'의 기요코를 시작으로 각각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사롭지 않지만,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기묘한 사건에 맞닥뜨리게 된다. 마치 심연에서 시작되는 사신의 부름에 응하는 것처럼...

누구나 겪게 되는 이사라는 이벤트와 문, 수납장, 책상 등 가까이에 있는 물건들이 매개가 되어 서서히 숨통을 조여간다. 문은 수납장으로, 다시 수납장은 책상을 지나 상자로, 벽을 지나 마침내 평범한 문틈에서 비어져 나온 끈으로 링크된다. 사신을 마주친 모든 사람이 생사를 달리한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듯한 평범한 이야기가 오싹한 여름밤을 만들어 주는 이야스미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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