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제임스 리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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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쇠사슬에 꽁꽁 묶여 도망치지 못하게 감금된,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살아있는 인형에 불과하지." (p61)

삶에 지친 여인의 뒤태가 말하지 못하는 사연을 품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는 그녀들의 애잔한 삶을 말이다. '성매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화두고,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각종 성범죄는 갈수록 지능화되어 심심치 않게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부당한 위력과 잘못된 관행에 따라 일어나고 있던 크고 작은 성범죄가 사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여검사의'Me, too'로부터 촉발되어 끊임없이 그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여전히 '여성'으로 살기에는 험난한 세상이다.

제임스 리의 소설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은 홍등가로 불리는 그곳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처절한 삶을 나는 법을 잊어버린 새처럼 살다 사라져간 여인 '소희'의 시각으로 그려낸 글이다. 그녀 또한 각박한 삶을 버티지 못하고 새장과 같은 그곳으로 흘러들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다. 나는 법을 잊어버린 작은 새처럼...

"그녀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치욕까지 견뎌내면서 온몸이 너덜너덜해져 만신창이가 된 채 군산 업소를 탈출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좁은 새장에만 갇혀 있어서 스스로 나는 법을 잊어버린 새처럼 방황하다가 결국 새장으로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다." (p.161)

기억조차 나지 않는 군산 성매매 업소의 화재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행히도 19명의 안타까운 희생을 통해 성매매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그녀들의 자활을 돕는 정책이 나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돈과 권력으로 여성의 몸을 사고판다. 주인공 소희가 군산의 성매매 업소를 탈출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의 고단함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고 지옥 같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는지를 말이다.

잘나가는 연예인과 기획사가 엮여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버닝 썬 사건을 비롯한 많은 성범죄 사건들을 떠올린다. 업소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하는 그들의 뻔뻔함과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 또한 회자되는 사건들을 범죄로 인식하기보다는 돈을 주고받은 거래로 치부해버리곤 하는 잘못된 무의식을... 그녀가 지옥 같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굶주림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내보이는 주변의 편견 때문이 아니었을까. 19명의 꽃 같은 생명을 그곳에 가둔 건 돌덩이 같은 자물쇠가 아니라 우리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싶은 탓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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