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알맞은 걸음으로 - 졸혼, 뇌경색, 세 아이로 되찾은 인생의 봄날
아인잠 지음 / 유노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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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 않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 시인의 산에 오르며 / 내 삶에 알맞은 걸음으로 p.46

저자의 전작 '내 인생에서 남편은 빼겠습니다'를 인상 깊게 읽었었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단호하게 접고, 아이 셋과 독립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글을, 같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공감했던 기억이다. 가시밭길 같은 앞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만, 스스로를 잃고 사는 것에 지쳐 행복을 찾아 당당하게 가시밭길로 전진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를 응원했었다.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비록 힘들도 더디지만, 남편에게 이끌려 사는 것이 아닌 내 걸음으로 나에게 맞춰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그녀의 굴곡진 삶에 다시 한번 폭풍공감을 쏟아낸다. 불안함에 안절부절못하던 오후 다섯시가 여유로움이 되고, 한순간 한순간을 인생의 마법으로 느끼게 되는 평화로움에 말이다.

요즘 한동안 나의 얄팍한 인간관계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하하 호호 늘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곤 했던 내가, 생각이 다른 아이들을 만나 힘에 부친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담을 쌓게 되기까지 두 달여간의 여정을 겪어보니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라는 말이 실감이 된다. 손톱만 한 예의도 걷어 차 버린 그들의 버릇없는 행동과 위로로 포장되어 전달되는 격려들이 한동안 나를 할퀴고 지나갔었다. 아직도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나는 나의 마음을 위해 하하 호호 늘 좋은 사람이었던 나와 함께 그들을 내려놓았다. 간간이 속상하고 우울해지기는 하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상처를 늘리고 있을 때보다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음을 느낀다.

우리 엄마도 나를 보면서 종종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데...' 하시면서 가슴 아픈 표정을 짓곤 하신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고 싶은 욕구가 없는 말 그대로 하고 싶지 않아서 남들보다 조금 수수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물론 직장에 매인 몸인지라 시간이 부족해서 하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데는 못 간다. 그대신 월급을 받고 적당히 풍족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저자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느꼈던 '월세 내는 날'의 짜릿함처럼 말이다.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입고 싶은 거 못 입고, 하고 싶은 거 못하고, 가고 싶은 데 못 가고..." (p.38)

간혹,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짐을 느낄 때가 있다. 내성적인 성격을 감추고 외향적인 척하거나,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를 수십 번 곱씹으며 의미를 생각하면서도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낀다. 생각이 다른 아이들을 포기할 즈음, 나는 거의 모든 생각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였고, 쓸데없는 변명을 만들어 나를 방어하기에 바빴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깨끗하게 포기하고 내 마음을 다독여 주기에도 아까운 시간을 쓰면서 말이다. 남들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을 수 있으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빌어먹을! 후회라니.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전진하는 것뿐입니다." (p.112)

남편과 함께 걷다가 넘어졌던 일이나, 함께하는 시간을 위한 등산이 아니라 말 그대로 등산만으로 끝났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우리 남편이 슬며시 떠오른다. 평소에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나쁘지 않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외출에서는 혼자 뚝 떨어져서 걷거나, 함께 등산이라도 가는 날에는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앞서가는 남편의 모습에 지쳐서 나 역시 남편과 함께하는 외출을 즐기지 않는다. 저자의 여러 이야기 중 가장 공감 가는 부분이라, '당신하고 외출했을 때 내 기분이야'라고 말하며 남편에게 다 읽은 책을 건넨다. 함께 하는 외출이 즐거워질 수 있는 작은 변화를 기대하면서.

더디고 느리지만, 나에게 맞는 행복한 걸음으로 남은 시간 기운 내서 버텨버기로 하면서 책 읽기를 끝낸다.

"나는 버리고 떠나는 삶을 존중하지만, 이제는 버티고 견디는 삶을 더 존경한다"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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