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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
권라빈 지음, 정오 그림 /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6월
평점 :
"달팽이는 좋겠다 집이 가까워서"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싶다. 요즘 부쩍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고 지쳐가고 있는 탓에 달팽이가 집으로 숨어버리듯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저자의 마음에 나의 마음이 살며시 투영된다. 이어지는 짧은 글들은 긴 여운을 남긴다기보다는 가만가만 위로해 주듯 마음을 쓰다듬는다. 공감의 위로라고나 해야 할까. 이별에 아파하던 상처가 새로운 만남과 사랑으로 치유되어 간다. 새살이 돋듯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따뜻한 햇살 한 줌을 기대하며 집 밖으로 한 걸음씩 나올 용기를 얻게 한다.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글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나의 행복이 소중함을 알려주는 글을 시작으로 고단함과 이별, 그리고 다시 만난 사랑을 다독다독 이야기하고 있다. 햇빛 냄새가 담뿍 묻어나는 이불 한자락 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깊은 생각 없이 도망가는 것 또한 일상임을 말한다. 꾸역꾸역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눌러 담아 가며 나의 행복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위로하고 있다.
"도망가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도망을 응원해요." (p.44)
짧은 글과 함께 있는 그림들은 따뜻한 햇살 한 조각을 선물한다. 예뻐서 눈길을 잡아두는 그림이기보다는 잔잔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새기듯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단한 하루의 끝자락에서 가만가만 등을 쓰다듬어 준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남보다 더 힘들고 덜 힘들고 그런 거 없어요. 충분히 괴로우실 만해요. 저는 당신의 힘듦을 충분이 이해해요." (p.33)
하루종일 외롭게 집에 혼자 있었음에도 가족 누군가의 발소리라도 들리기 시작하면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반가움을 표현하는 아이가 우리집에도 함께 살고 있다. 밤새 이방저방을 돌아다니며 쪽잠자기를 마다하지 않고 가족을 지키곤 한다. 하루종일 혼자 둔것에 조금의 노여움도 타지 않은채 온기를 나눠 준다. 말로는 늘상 귀찮다고 하면서도 벨소리에 뛰어나와 세상을 다 얻은 듯 반가워하는 저 놈이 없었으면 내 일상의 한조각의 생기가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 건 하얀 솜뭉치 같은 저 생명이 어느새 나의 가슴한켠에 자리잡은 탓이지 싶다.
에세이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감성적이라고나 해야할까... 시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시처럼 다가오는 글들이 좋다. 책 소개글에 있는 것처럼 '몰래 나를 들여다보고 오직 나만을 위해 써준 듯 한' 글들이다. 과하지 않게 가만가만 위로해 주는 느낌이 잔잔한 울림을 선물한다.
아무 이유없이 투정을 부려도 이유도 묻지 않고 그저 내 손을 꼭 붙잡고 도망쳐줄 그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 한사람의 존재만으로도 나의 일상이 살만해 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남편이 있긴 하지만 지금 남편을 그 자리에 대입하기에는 분홍분홍한 감성이 사라져 버릴까봐 일단 패스 ♡)
"지금도 충분이 괜찮다. 느린게 아니라 침착한 것이니 서두를 필요 없다. 우리는 서서 걷기까지 몇 천번을 넘어지고도 끝내 일어섰다. 그러니 어린이든 어른이든, 남들의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 느려도 괜찮다." (p.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