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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애벌레한테는 끝인 것이 사실 나비한테는 시작이죠" (1권 p.371)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나의 기억은 좋은 편에 속하지 않는다. 항상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신간이 출간되고 대부분을 손을 슬쩍 대보기는 하지만 왠지 어려운 탓에 끝까지 읽기보다는 중간 그 어디쯤에서 멈춘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서평단 모집이 시작되고 홀린 듯 서평단 신청을 한다. 감사히도 서평단에 뽑아주신 책콩 덕분에 여유를 부려가며 다시 한번 베르베르의 소설에 도전장을 던져본다. 기분 탓인지 이번 기억은 전작과 달리 가볍게 술술 읽히는 느낌이다. 동양적 정서에 잘 맞는 '윤회'와 '전생'을 다른 탓인지 색다르게 재미있기까지 하다.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 두 권을 여유로운 일요일 뒹굴뒹굴하며 훌쩍 읽어버린다.
주인공 르네의 111가지의 전생과 현생을 겹겹이 보여주듯 비추는 방향에 따른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렌티큘러 표지가 독자를 맞는다. 보통의 윤회를 다룬 이야기들이 한 번의 윤회를 언급하는 데 반해 베르나르의 기억은 무려 111가지의 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소 과장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전설의 아틀란티스 대륙의 거인 게브를 거쳐 현생에 르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인생에서 아쉬움을 자아냈던 작은 조각들과 기억들이 이어져 완성된 영혼의 므네모스를 만든다.
무료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던 역사교사 르네는 우연히 찾은 공연장 '판도라의 상자'의 심층 최면 대상자로 지목되어 최면술사 오팔의 인도로 전생의 기억에 도달한다. 영웅적인 삶을 살았던 이폴리트를 시작으로 평화로운 생을 마감하는 레옹틴 백작부인을 지나 쾌감의 절정을 이룬 제노를 거쳐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게브에게 이르기까지의 심층 최면은 계속되고 르네는 그들이 생을 마치며 희망하는 바람으로 111개의 전생이 계속되고 있음에 이르게 된다.
많은 기억들이 왜곡되어 기억되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역사들이 사실이 아닌 승자에 의한 기록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경험한 전생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게브의 기록을 현생에서 찾아 원하는 데로 집단의 기억을 만들어 고정시켜버리는 기억의 왜곡을 바로잡고 싶은 르네의 바람이 최면술을 뜻하는 히프노스로부터 전설의 아틀란티스를 거쳐 전설을 그들의 기억을 전하려던 게브와 누트가 두손을 꼭 잡고 잠든 이집트까지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사실은 내가 당신의 무의식에 들어가 그 카드를 심어 놨어요. 당신은 그 카드를 고른다고 믿었지만 실제로 당신이 고른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마술 영로는 이걸 <강요된 선택>이라고 하죠." (1권 p.233)
두 권의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세뇌당하듯 윤회와 전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의 삶 또한 앞선 누군가의 삶에서 갈망하던 무엇인가를 이루는 삶인지 말이다.
"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2권 p.136)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쌓이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기억을 담은 무표정한 얼굴이 이어진다. 사약한 물욕으로 무심코 보아넘긴 렌티큘퍼 표지가 초판본 한정 표지라는 말에 소장욕구가 한층 더 높아진다. 적당한 무게감과 활자를 가진 만족스러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