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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의 가면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48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평점 :
책장이 빠르게 가볍게 넘어가는 책이 아니였던지라, 조금 긴 호흡으로 읽기를 끝낸다. 한 소설가의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 희대의 사기꾼 '디미트리오스'를 쫓는 과정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가면 뒤에 숨어 사기, 마약밀매, 살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그를 쫓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자신만을 위한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말이다.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추리소설에 전념하고 있던 전직 대학교수 출신 추리소설 작가 래티머는 다섯번째 추리 소설을 따뜻한 햇빛 아래서 집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그리스인 친구의 권유로 문제의 출발지가 되는 이스탄불로 향하게 된다. 이스탈불에 도착한 래티머는 추리소설에 집착하는 하키 대령으로 부터 디미트리오스에 대해 듣게 되고, 호기심과 추리소설에 인용할 수 있는 탐정이 되고 싶은 마음을 품고 가면속에 꽁꽁 숨겨진 디미트리오스를 찾아 나선다.
살해된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을 쫓는 혼돈의 추리속에 숄렘과 피서르의 살인범이며, 마약 밀수업이자 포주이며 도둑이고 스파이였던 그리고 백인 노예 매매꾼이며 깡패와 번듯한 금융업자로까지 행세했던 디미트리오스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살해당해 마땅한 그런 자가 멀쩡히 살아서 잘 지낸다는 부조리한 사실에 광분한다. 어쩌면 여러가지 가면뒤에 숨어있는 디미트리오스의 모습이 그만의 모습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래티머 역시 디미트리오스의 숨겨진 행적을 쫓는 과정에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기차에서는 생각할 거리가 많다고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짐이 그렇지요. 인간과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인간에게는 온갖 화려한 색깔의 레이블이 붙게 됩니다. 하지만 그 레이블은 오직 밖으로 향한 모습만 있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쪽에만요. 중요한 것은 안에 있는데요." (p.89)
스파이 소설의 최고 걸작이라는 작품 소개처럼 래티머의 쫀쫀한 추리와 심리변화가 흥미로운 책이다. 요즘 추리소설 문체에 익숙한 탓에 책장을 넘기는데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스파이, 범죄자 디미트리오스에 대한 래티머의 심경변화에 몰입하게 된다.
"인간은 악마의 가면처럼 얼굴을 사용한다. 얼굴은 자기 감정을 보충해 주는 감정을 타인의 가슴속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다. (중략) 사람들은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늘 충격을 받는다." (p.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