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메마르고 뾰족해진 나에게 그림책 에세이
라문숙 지음 / 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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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면서 무의식중에 정말 따뜻한 글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랑색 글씨와 초승달이 장식하고 있는 표지를 살짝 걷어내면 샛노란 표지가 다시 나를 맞는다. 봄빛을 닮은 노랑색은 책을 펴기도 전에 어린시절 그 어디쯤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어릴적 좋아하던 색이었지만, 어리고 풋풋했던 어린시절을 지나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즈음에는 마음에 쏙 드는 노란색을 발견해도, 나이든 사람이 주책이라는 주변의 핀잔이 두려워 슬그머니 내려놓곤 하던 색이다. 봄을 기다리는 지금 다시 만난 노란색 표지가 나를 어린시절 그 어디쯤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냥 무작정 기분이 좋아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진과 그림으로 가득찬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어른이되고 나서는 막연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는다. 어른은 그림책을 보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옆에 있는 것 만으로 위로가 되는 토끼를 기다리는 테일러처럼, 나에게도 그저 평화롭게 가만히 나를 위로해 주는 토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장면이 바뀔때마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책을 읽는 시선이 유연해 지고 있음을 말하는 작가님처럼 말이다. 나도 한때는 그림책의 주인이었을텐데...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림책을 포기해버린건 아닌지 모르겠다.

"테일러가 자기 안의 혼란과 낙심과 분노를 풀어 완전히 녹여낼 때까지, 그리고 용기를 얻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토끼는 테일러 곁을 떠나지 않는다." (p.41)

대부분은 시끌시끌하게 사람들속에 있기를 좋아하지만, 관계속에서의 곤함과 무신경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면 종종 혼자만의 시간을 바라게 된다. 항상 함께하는 것도, 항상 혼자인 것도 정답은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세상의 날카로움에서 버티는 것보다, 의자 한켠을 내어준 곰씨처럼 내 코가 빨개졌다고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혼자'와 '함께'는 동시에 있을 수 없지만,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다. 오히려 '홀로'와 '함께' 사이를 빈번하게 오갈수록 우리는 더 강해지고 우아해질지도 모른다." (p.59)

내가 두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셨는지 알게 된다. 우리 엄마도 자유롭게 봄날의 거리를 걷고 싶으셨을텐데 말이다. 저혼자 큰것처럼 철없는 나를 위해 봄날의 여유로움을 포기한 엄마 젊은 날이 짠하다. 엄마가 되고나서 당연하지 않은 당연함을 강요받고,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나의 봄날이 조금은 안스러워진다. 하지만, 아이는 마음은 내 젊은 날의 안스러움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사랑스럽다고 여기게 되는걸 보면,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아이의 온갖 '처음'을 기대하며 가슴이 벅찬 엄마, 아이에게 온전한 세계이자 놀이 친구인 엄마, (중략)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공부를 포기해야 했지만 그 아이가 자신에게 짐이아니라 행운의 부적이라고 얘기하는 엄마" (p.185)

매번 다르게 읽히는 그림책처럼,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세상을 사는 방법을 도란도란 이야기 해주는 것 같다. 때로는 그 누군가의 토끼가 되고 때로는 나를 위로해 줄 토끼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오늘밤 외롭지 않은 꿀잠을 잘 수 있게 나의 배갯머리를 지켜줄 토끼를 기다리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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