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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평점 :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행복 따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귀찮아도 한번 해볼까라고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던지는 책의 제목 조차도 시크하다. 행복 따위 나의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아서 여지껏 신경쓰지 않았지만 남들 다 쫓아다니는 행복이니 나도 한번 쫓아가 볼까라고 무료하게 툭 던지는 제목이다. 제목처럼 본문에서도 가볍게 무심한듯 일상을 전하고 있어서 책을 읽는 나 또한 편안해 짐을 느낀다.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300여권의 역서가 있는 번역가 권남희 작가의 번역가로서의 일상과 함께 싱글맘으로 딸과의 애증(?)의 관계까지 담백하게 담고 있는 책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던 책이었는데, 읽는 동안 나의 선택을 칭찬하게 된다.
번역가이지만 인터뷰가 들어올까봐 두려워서 번역한 책이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하기를 바라고, 책을 번역하다가 무작정 소설속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딸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준비해간 현금이 부족해서 여행을 망치기도 하고, 극심한 무대울렁증 때문에 강의 의뢰가 들어올까봐 두렵기도 하고... 세상에 나서는게 한없이 당당할 것 같지만 자신을 인간진동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외부에 나서는 것이 어렵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풀어나간다.
300여권이나 번역한 번역가가 특별히 마련된 서재가 없는 것도 놀라운데 익숙한 주방 한켠에 앞에는 TV가 놓여 있고, 발치에는 노견이 옆드려 자고 있는 공간이 제일 편안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너무도 가볍게 아무렇지도 않게 써내려간것 같은 글의 분위기 덕분에 옆집 사는 친한 동네 언니의 소소한 일상을 듣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번역가의 에세이 답게 책의 곳곳에 책을 번역하면서 느꼈던 에피소드들이 포함되어 있어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권남희 번역가의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게 한다.
"참고로 내 작업 공간은 이렇다. 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방, 오른쪽에는 거실, 앞에는 텔레비젼, 옆에는 소파, 발밑에는 멍멍이, 주부미가 철철 넘쳐 난다. 이러니 따뜻한 번역이 절로 나오는게 아닐까?" (p.113)
편집자와의 소소한 오해를 유쾌하게 풀어내고 운 좋게 오해를 풀고 웃을 수 있었음을 다행이라 여긴다. 이런 작은 것조차 행복이니 궂이 행복을 찾아 노력하지 않아도 일상이 행복이라 여기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치사한 방법이지만 화가나거나 짜증이 나더라도 '발을 끼우고 문을 닫는 여지'를 남겨두는 소심한 일상을 전한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모두가 살짝 치사한 방법을 쓰고 있으니까 쓸데없이 마음을 괴롭히지 말고 편안해지라는 조언처럼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오조오억 명이더라도 나는 누군가가 싫어하는 오조오억 명에 들어가기 싫은 게 사람의 마음." (p.85)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절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한줄. "너의 엄마를 졸업한다" 쥐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 키웠것만 어느순간 혼자 알아서 큰 줄 알고 무례해지는 아이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하루종일 일하고 들어와서도 밥하고 있는 엄마한테 집에 먹을게 없다는 둥, 엄마가 하는 요리는 맛이 없다는 둥 어이없는 아이에게 나 역시 던지고 싶은 말이다. 졸혼도 하는데 돌아서면 남이되는 남편같지는 않아 쉽지 않겠지만 다 큰 아이와 떨어지는 졸친은 대수냐 싶다.
"노력이 전혀 열매 맺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걸 가르쳐 주어서 고~맙다." (p.142)
바쁘면서도 무료한 일상이라고 표현하는 권남희번역가의 일상을 엿보면서 어쩌면 나도 바쁘지만 나를 위해 바쁜게 아닌 나를 위해서는 너무도 무료한 일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뒤돌아 본다.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음식, 사고 싶은 것들을 바쁜 일상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조금 귀찮지만 나를 위해 무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보고 싶어지는 책읽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