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방 - 개정증보판
오쓰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일곱 번째 방은 2009년 출간된 오츠이치의 ZOO의 개정판으로 다소 으스스한 11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곱 번째 방을 비롯한 ZOO, 카자리와 요코, SO-FAR, 양지의 시, 총 5편이 옴니버스식 영화 ZOO로 개봉되기도 했다. 음산한 5개의 각기 다른 단편이 옴니버스식 영화로 계속되면 보는 동안 움찔움찔하면서 화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보지 않을까 싶다.

첫번째 단편, 일곱 번째 방은 여느 남매처럼 투닥거리던 남매가 영문도 모른채 회색 콘크리트로 벽으로 둘러쌓인 방에 갇힌 사건으로 부터 출발한다. 회색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텅빈 방에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방을 가로지르는 더러운 물이 흐르는 도랑 뿐이다. 남매를 가로막고 있는 철문 바닥으로 죽지않을 정도의 식빵과 물만을 제공한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은채로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은 커지고,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위해 도랑을 통과할 수 있는 아이가 방을 나가보기로 한다. 도랑으로 이어진 일곱 개의 방 그리고 그 안에 가둬진 사람들... 그들은 공포에 휩싸여 세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단편의 마지막장을 읽을 때는 괴기스러운 웃음소리와 전기톱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너도 보았을 거 아니니? 못 봤을 리가 없어! 매일 오후 6시가 되면 이 도랑에 시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p.22)

세번째 단편, ZOO 사진과 영화의 차이는 시와 소설의 차이를 닮았다. 100일이 넘게 우편함에 사진이 들어있다. 사진에는 연인이었던 여자의 시체의 모습이다. 하루하루 부패가 조금씩 진행되고, 시체 위를 가로지르는 벌레의 위치만 조금 바뀐사진이다. 오늘도 그는 그의 연인을 죽인 살인범을 찾아 헤맨다. 매일매일 발견되는 그날의 주유영수증과 구겨진 사진한장. 그는 그녀를 죽인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오늘도 그는 'ZOO'라는 무자 앞을 지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아니 뒤돌아 서서 소름끼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그녀를 죽였어...., 내가..... 그녀를....." (p.120)

네번째 단편, 양지의 시 작업대 위에서 눈을 뜬 나. 모든 것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심지어 생각하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속에 없는 모든 것들은 할 수 없다. 흩어진 블럭으로 범선의 귀퉁이조차 만들어 낼 수 없다. 해본적이 없는 일이다. 나는 그를 매장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하지만 죽음이 갖는 의미를 알지 못한다. 슬프지 않다. 정확한 매장을 위해 구덩이를 파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다. 숲속에서 기르고 있는 야채를 갉아먹는 토끼가 있다. 야채를 뜯으로 간 어느날 나는 토끼와 함께 비를 만나고 절벽 밑으로 떨어진 토끼를 구해보려고 하지만 거친 빗속에서 피를 흘리며 토끼는 죽어간다. 매장을 위한 구덩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파고 있던 내가 그의 죽음을 기다리는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집어넣은 그가 원망스럽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도 점점 잊어가는 죽음에 대한 상실감에 대해 작업대 위에서 태어난 이름도 없는 '그것'이 느끼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잊혀져 가는 죽음의 상실감을 되찾아 오려고 하는 것처럼.

"'그게 죽음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제야 알겠다. 죽음이란 바로 상실감이었다." (p.148)

이어지는 단편들 또한 세상을 풍자하듯 써내려 가고 있다. 말의 폭력성을 일깨우고 있는 '신의 말', 가정.학교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차별.편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카자리와 요코', 돈을 따라 움직이는 가족들을 비틀어 보고 있는 '혈액을 찾아라', 가해자는 범죄를 잊고 일상을 살하가지만 아픈 기억을 잊지 못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군상을 그린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등 하나하나의 단편들을 통해 때로는 괴기스럽게,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허무하게 사회의 어두운면을 꼬집어 내고 있다. 11개의 단편이 모두 흡인력이 있다고 말하수는 없지만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은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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