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도시의 유쾌한 촌극
스티븐 리콕 지음, 허윤정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촌극 (寸劇) [촌ː극] [명사] 1. 아주 짧은 단편적인 연극. 2.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우발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국어사전)

왠지 촌극이라는 말뜻을 알고난 뒤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강한 의무감을 주고 있는 제목과 뒷표지글 탓에 홀린듯 촌극에 대한 낱말뜻을 찾아본다. 이미 뜻을 알고 자주 사용하고 있는 낱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짧은 단편적인 연극'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다. 아마도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짧은 연극처럼 다소 소란스러운 연극같은 일상을 그리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 읽었던 어느 신사의 낭만적 모험, 우리의 미스터 렌과 닮은 표지라 정감가는 첫인상을 갖고 책을 편다.

언덕 기슭에 펼쳐진 작은 호수를 끼고 자리잡은 마리포사에서 벌어진 연극 같은 일상에 대한 11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캐나다 건국일과 여왕탄생일의 기념운항과 우애공제회와 금주공제회의 나들이 외에는 딱히 갈곳이 없는 마리포사벨호가 호수에 정박되어 있고 조용한 거리의 모습과 달리 마리포사는 분주히 움직이는 도시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항상 분주하고, 집안 곳곳에서는 할일이 넘쳐나는 시골동네의 전원생활을 보는 듯 하다.

스미스호텔의 주인 스미스씨는 사업면허를 지키기 위해 면허권 유예기간동안 마리포사 마을사람들을 홀리기 위한 프랑스식 호프를 열고, 25센트의 입장료만 내면 1달러어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같지만 마리포사 주민들은 스미스호텔에 푹 빠져 면허권 유예기간이 지나기도 전에 스미스호텔의 면허취소에 대한 탄원서를 내기에 이른다. 물론 탄원서가 수리되자마자 멋진 프랑스풍의 호프는 수리를 명분으로 문을 닫았다. 25센트의 입장료로 1달러어치의 음식을 제공하는 스미스씨도, 면허권이 부활하자 마자 없어진 호프를 의아해 하지 않는 마리포사 주민들도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리포사는 일상을 되찾는다. 심지어 스미스호텔의 호프로 주민들의 신망을 얻은 스미스씨가 의원으로 출마하라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 사실은 면허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꼼수를 부렷는데도 말이다.

마리포사의 이발사 제퍼슨의 광산열풍에 힘입어 떼돈을 벌었다가 한순간의 사기로 홀라당 날려버리는 풍자는 투자에 대한 공부없이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깡통계좌의 주인이 되는 우리네 개미투자자들을 보는 것 같지만, 벌어놨던 돈을 모두 날리고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면도를 계속하고 있는 제퍼슨의 모습을 보고도 마음아파하지 않는 마리포사의 여유로움이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고? 쯧쯧! 마리포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제프는 꽤 늦게까지 일해야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한평생 열심히 일했던 사람에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p.70)

11개의 이야기는 각각의 주인공이 벌이는 웃픈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장르소설처럼 한숨에 쭈욱 읽어내려가게하는 흡인력이 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마리포사의 크고 작은 촌극에 빠져 있다보면 어느새 마리포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를 느낀다. 의미없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에서 한발자국쯤 떨어져 조용하지만, 내가 일상의 주인공이 되어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으로 말이다. 매일 5시에 출발하는 마리포사행 기차를 타고 싶은 이유는 옆집 스미스씨의 깜찍한 프랑스 호프 운영도 제퍼슨의 투자사기도, 빚으로 망해가는 교회가 화재보험금으로 기사회생하는 것도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촌극이 되는 일상이 그리운 걸지도 모르겠다.

"가장 친절하고 사교적인 기차이기도 하다. 승객들이 모두 몸을 돌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어느새 점점 가까워 진다. 교외를 달리는 고속열차의 지루하고 서먹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p.2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