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죽일 수 있어."

생활고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에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희생되는 아이들이 종종 발생하고 한다. '가족동반자살'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가장 믿고 의지하는 부모에게 살해 당하는 '타살'임에도 불구하고 '자살'로 표현된다. 아이들만 남겨두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되면 아이들이 제대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추측과 아이들을 부모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소유욕 탓에 아이들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희생 당하곤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가족 동반자살은 25건에 이른다. 한달에 두번꼴로 무고한 아이들이 부모의 그릇된 선택에 의해 살해당했다.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의 생명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없음에도 말이다. 이 책의 사례처럼 부모의 그릇된 선택에서 극적으로 살아 남기도 하지만, 믿었던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죽음의 공포와 다른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겪은 아이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상처받은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보여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나 역시 아버지에게 죽을 뻔했다고 항변해도 나는 여전히 살인자의 자식이었다. 아버지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향해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p.71)

조용한 시골마을이 유일하게 북적거리는 유등축제를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등축제를 하루 앞둔 어느날, 엄마를 죽이고 복역하던 진웅의 아버지가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벌어진 살인사건... 오래전 진웅의 가족동반자살 시도에서부터 그간의 사건들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르고 살인사건의 수사망은 천천히 진웅의 가족을 위협한다.

범인은 누구인가?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연쇄살인일까, 아니면 오래전 미궁으로 빠져버린 저수지 사건을 뒤로한채 마을을 떠나버린 형 진혁일까 그도 아니면 악의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선한 눈을 가진 진웅에게 숨어 있던 악마의 짓일까? 긴장감 넘치는 추리와 함께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들이 퍼즐을 맞춰간다.

아버지, 진혁 그리고 진웅 세사람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는 사건은 범인이 예상될듯 말듯 끝까지 나의 시선을 사로 잡고 있다. 유등축제 소원등에 가족소원을 '각자 잘 살게 해주세요'라고 적을 수 밖에 없는 이유 공감하고 나면, 범인은 누구 인가를 찾기 보다는 범인이 될 수 밖에 없는 비극의 원인에 함께 가슴아파하게 된다. 더이상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빼앗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가족 동반자살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부모에게 죽임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내가 뭘 잘못했을까’ ‘뭐 때문에 이렇게 됐을까’ 자책하며 자폐적으로 바뀝니다. 그런 트라우마에 대한 상담치료도 시급하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그릇된 소유욕과 사실상 살인을 당하는 이들의 경험을 ‘일가족 동반자살’로 치부해버리는 시선도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20.3.5. 한국경제 김선미작가 인터뷰)

지난해 CJ ENM과 카카오페이지가 주최한 제3회 추 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답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더불어 평소에도 카카오페이지의 소설을 즐겨보고 있는 나의 취향에는 좀더 딱 맞았던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