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아저씨 개조계획
가키야 미우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워킹맘의 피곤한 삶에 공감가는 책이다. 워킹맘의 시선이 아닌, 좋은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을 다니다 은퇴한 할아버지의 시선으로 돌아본 전업주부, 워킹맘,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자 그리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남자(아들)에 대한 소설이지만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돌아보고 깨닫기 때문에 훨씬 더 공감되는 글이지 않을까 싶다.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닌가보네 하는 조금은 씁쓸한 생각과 함께 몰입하게 된다.

평생을 불편함이 없음을 가장하고 함께 살다가 남편이 은퇴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실행에 옮기는 졸혼, 황혼이혼, 가정내 별거... 적당히 가부장적인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으로 살아온 나 역시 문득문득 떠올리는 단어다. 연금때문에 지금 이혼하면 안된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면 그리고 경제적으로 큰 무리가 없으면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맘을 품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직장인들이 안주머니에 사표를 써서 부적처럼 넣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모성본능이나 3세신화든 말도 안되는 이유를 만들어 아이의 양육을 엄마에게 미뤄버린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일을 하지 않는 시대에도 어이없었던 고정관념을 맞벌이가 당연시 되고 있는 요즘까지도 강요하고 있다.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가 많아지고,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찾으로 오는 아빠도 많아지는 등 최근들어 많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자로 살기는 벅찬 세상이다.

대형 석유회사에서 정년 퇴직한 쇼지 쓰네오는 퇴직후 아내 도시코와의 꿈같은 노후 생활을 꿈꿔왔지만 막상 퇴직후 막닥뜨린 현실은 달랐다. 현모양처였던 아내 도시코는 보도 듣고 못한 후겐병을 이유로 쓰네오를 멀리하고, 똑똑하고 야무진 딸 유리에는 아빠를 '당신'이라고 부르며 서슴없이 독설을 날린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만하다 이제 겨우 시간을 얻었는데 가족들로부터 외면 당하게 되는 삶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던중 아들 가즈히로로부터 며느리가 취직을 하게 되었으니 남는 시간 손자, 손녀를 돌봐 줄 것을 부탁받는다. 여자도 아닌 내가?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당연히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인데? 별로 중요하시도 않은 일을 하겠다고 세살도 안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러 가는 며느리가 못마땅하지만, 가족들에게 떠밀려 난생처음 아이들을 돌보게 된다. 어린아이지만 할아버지가 동생을 돌보는 것을 돕는 야무진 손녀 아오이와 찹쌀떡 같은 볼을 가진 손자 렌을 돌보면서 가족을 되돌아보고 아내 도시코와 며느리 마이, 그리고 딸 야오이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된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돌보면서도 아내, 며느리, 딸의 어려움을 공감하지 못했다면 세상은 변할 수 없었을 텐데 말이다. 소설책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그녀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준 할아버지 쓰네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아직도 가부장적인 우리 남편과 앞으로 그녀들과 세상을 살아가야할 우리 아들들에게 쓰네오 할아버지처럼 더 늦기 전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쥐어줘야겠다.

"굳이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나요? 유리에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 줬으면 좋겠는 걸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필요 없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인생을요. 그 애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내 딸이니까요." (p.36)

_ 아내 도시코, 딸은 없지만 나의 경험을 생각한다면 나도 딸에게 도시코와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나도 회사 생활한 지 10년이 넘었어. 그렇기는 커녕 당신 쪽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남초 사회에서 여자가 전문직으로 일하다 보면 성희롱을 당하는 건 물론이고 여자를 우습게 아는 상사나 동기들을 얼마나 참고 견뎌야 하는지 알아?" (p.67)

_ 딸 유미에, 절대공감! 여자가 직장에서 인정받으려면 같은 조건의 남자보다 10배이상 열심히 해야한다.

"남편만 혼자 살 때와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쑥하니 꾸미고서는, 아마 회사에서도 여직원들에게 인기 만점이겠죠. 가정부 역할만 해 준다면 어떤 여자와 결혼해도 상관없다는 생각 같습니다." (p.215)

_ 육아잡지 인터뷰(며느리 마에), 맞벌이를 하고 있는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고민, 불만,,,

이것 또한 고정관념이겠지만, 일본은 싫은데 일본소설은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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