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이고 남편이고 주부입니다만
왕찬현 지음, 기해경 그림 / 파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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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사회에 뿌리깊은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결혼관과 가정내 역할을 뒤집고 있음을 당당히 밝히고 있는 유쾌한 제목의 책이다. 본문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아기자기 귀엽고, 알콩달콩 사랑스럽다. 결혼한지 너무 오래 지나서 설렘보다는 정으로, 보고싶은 감정보다는 생사여부만 확인되면 그만인 지금의 우리 남편이 아닌, 두눈에 하트를 뿅뿅 담아서 바라보곤 했던 처음 그시설 남편이 떠오르게 한다.

연상연하 커플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평범함을 살짝 넘어선 나이탓에 주변 사람들의 많은 걱정과 호기심속에 결혼했다. 허나, 결혼하고 살다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불편의 진리를 시시때때로 느끼면서 살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살다보니 연하도 아니면서 막내동생 철부지처럼 사고를 치기도 하고, 가끔은 나이를 훌쩍 넘어서는 꼰대 노릇에 아빠랑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착각을 하게 할때도 있더란 말이다. 물론, 우리 남편도 나를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데는 동의한다.

연하의 남편이 글을 쓰고, 연상의 아내가 글에 맞춘 그림을 그리고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적어도 한권의 책을 펴내는 동안은 서로가 오롯이 의지하면서 한몸처럼 작업했을테니 말이다. 오랜시간 같이 할 수 있는 취미하나 만들기도 힘든 정으로 사는 부부사이를 지탱해줄 수 있는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생긴 행복한 일이 아닌가!

다른 사람을 만나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있다. '내가 데리고 살것도 아닌데 하고 싶은 데로 하게 내버려 두자.'라고 읊조리면서 마음을 내려놓곤 한다. 하지만 부부사이는 이 방법으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는지라 매번 속을 태우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데로 남편을 바꿔놓고 싶어서 말이다. 30여년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함께 살게 되었으니 사사건건 맞지 않는게 당연함에도 오래도록 고집스럽게 서로에게 맞추려고 으르렁 대고 있다.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말이다.

"이제야 결혼의 참맛을 느낀다. 서로 다른 두 우주가 만나 하나가 되었는데, 어찌 균열과 폭발이 없겠는가. 싸우면 싸울수록 그녀가 더 사랑스럽고, 그녀를 알아가는 매 순간이 행복하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혼 위기의 부부는 예외 없이 상대방을 너무 잘 안다고 주장하는 반면, 화목한 부부는 서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고." (p.20)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인데 '주부'를 자처하는 연하남편이 부럽다. 성차별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맞벌이가 보편화되고 있음에도 육아, 가사의 대부분은 엄마, 아내에게 미뤄지고 있는게 현실이니 말이다. 우리집 또한 맞벌이를 하고 있음에도, 남편은 결혼한지 20년을 넘긴 지금도 쇼파 지박령이다. 아주 최근에는 조금쯤 철이 들어서 화장실 청소를 전담해주고 있다. 나도 여기에 부응해서 화장실 청소에서 완전히 손을 떼 버렸다.(못참으면 지는 거다!) 그리고 화장실 청소가 익숙해질 때쯤엔 다른 청소도 전담시키려고 살살 준비중인건 비밀이다.

서로 다른 두사람이 한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틀이 멀다하고 싸우지만 한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들고, 언제 싸웠냐는 듯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일상이 이어지곤 한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남편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주말에 잠을 몰아자는 내가 남편 눈에는 게을러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문제될 것도 없는 것이 함께사는 부부다. 아직은 톱니가 덜 맞는 건지 남편이 몸서리쳐지게 짜증날 때도 있지만, 심기일전해서 20년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 줘야 겠다.

"언젠가는 나 역시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상대를 위해 기꺼이 놓을 수 있는 마음. 이 역시 사랑의 넓은 스펙트럼 중 하나의 색채가 아닐까 하는 상념이 스친다." (p.197)

나른한 주말 오후 커피숍에서 사랑스러운 느낌을 담뿍 받으면서 읽어 내려간 글이다. 가벼운듯 써내려간 글이지만 연하남편이 연상의 아내를 바라보는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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