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소철나무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나뭇잎 사이에 하얗게 서리가 맺혀진 어두운 표지가 책을 읽기전부터 아련하게 어두운 이야기인가 짐작하게 한다.

우리집 베란다에도 소철이 한그루 자리잡고 있다. 오래전 아빠가 기르시던 화분을 내가 가져와서 죽지 않을 정도로 근근이 키우고 있다. 아주 오래동안 천천히 자라는 식물로 인식된다. 원통의 기둥을 따라 쭉 둘러져서 나온 잎들은 한해를 살고 마무리하듯 원통으로 스며드는 모습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나라는 모습에 대한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가 느끼는 모습이다. 나에게 소철은 한해 한해 아주 조금씩 살을 붙여 키워가는 나무의 모습이다.

열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소철과 눈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눈속에서 견뎌내는 소철의 우직함을 말하고 싶었구나하는 정도를 짐작해볼 뿐이다.

간결한 등장인물 서로간의 심리적인 맞물림으로 이어진 글이다. 결핍으로 표현되는 공허함과 그것을 원인으로하는 사건들로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아주 사소한 사건조차 원인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고백할 수 없는 이유가 또 다른 오해와 사건을 낳지만 결국 서로를 성장시키는 이유가 된다.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다. 언젠가 이 정원이 사라질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언젠가는 어떻게 될까. 마사유키는 약간 흐려진 하늘을 올려다 봤다." (p.17)

주인공 소가 마사유키는 3대째 정원사를 가업으로 하는 소가조원의 3대 정원사이다. 답답할 정도로 원리원칙을 고수하고 정원을 그 누구보다 아끼고 있다.

[눈의 소철나무]는 소가조원의 3대 정원사 마사유키 그리고 부채꼴 집을 중심으로 2013년7월2일부터 닷세뒤인 2013년7월7일까지의 이야기가 숨겨진 13년간의 사연과 함께 전개된다. 13년간 이어진 마사유키의 답답함이 풀리는 닷세간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결핍을 따라가고 있지만, 어찌보면 부모와 자식간의 애정결핍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아이가 가장 먼저 만나는 세계인 부모에게서 인정받고 사랑받으면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평범한 일상에 놓이지 못했을 때 맞닥트리는 세계는 생각 이상으로 차갑다. 부모에게 거부당한 아이는 자신의 결핍과 외로움을 알지 못한채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간다.

"기대하고 말거든요. 아주 약간의 정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구요. 하지만 원하는 걸 얻지 못한 채 배신당하지요. 그런 일이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됩니다." (p.205)

부모는 아니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료혜이를 13년간 돌본 마사유키 그리고 그를 거부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료혜이. 작은 료헤이가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던 세계는 마사유키였다.

"료헤이는 아무리 화내고 욕설을 퍼붓고 난폭하게 굴어도 마사유키가 돌아갈 때면 매달리는 눈빛을 한다. 어렸을 때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가지 마. 계속 같이 있어줘. 언제까지고 계속...." (p.37)

속죄를 위해서 였든, 그가 가진 결핍으로 인한 이끌림이었든 13년간 우직한 마사유키의 진심이 료헤이를 세상밖으로 끌어내고, 마사유키의 또하나의 진심이 닿아 따뜻한 결말을 보여준다. 정원사 마사유키의 성실한 모습은 고즈넉한 일본의 정원을 떠올리며 쓰리시노부의 맑은 풍경소리를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창밖에 쓰리시노부가 보인다. 살랑 부는 바람에도 풍경이 흔들린다. 마이코가 물을 주었나보다. 이끼와 넉줄고사리가 촉촉이 젖어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중략)

'모든 게 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밥이 하얗게 빛나 보인다. 결심하고 입에 넣자 그 따뜻함에 몸이 떨렸다. 꼭꼭 씹어 맛을 음미한다. 그리고 천천히 삼켰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사람 앞에서 울었다. 개라서 다행이다. 바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p.420)

어울리지 않는 감상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아이에게 나는 따뜻하고 충분한 세상이 되어주고 있는지 뒤돌아 보게 하는 글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