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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기 좋은 날 - 감자의 자신만만 직장 탈출기
감자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배부른 소리라고 질타받을지 모르지만, 직장생활 20년이 넘은 지금은 항상 사표가 주머니에 준비되어 있는 경지를 넘어 당장이라도 책상을 정리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이동이라도 있을때면 이미 마음은 안드로메다에 가 있다. 부럽다! 감자, 고구마. 나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표 한번 시원하게 던져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해맑게 웃으면서 사표를 들고 있는 표지의 감자가 진심 부러워진다.
감자 작가는 인스타그램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스타툰(인스타그램 + 웹툰) 작가다. 디자이너로서 본인이 겪은 직장생활의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공감가게 연재하고 있어 많은 직딩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책에서도 "30대 물경력 아이 없는 유부녀'로 감자를 소개하고 있다.
앞뒤 꽉 막힌 상사와 성실한 신입사원, 업무에 찌든 동료까지 지금 내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나라면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퇴사를 권할 수 있을까?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꾹꾹 누르고 참다가 용기있게 사표를 던질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또한 절대 그럴 수 없는 월급 노예인지라 안타깝게도 퇴사욕구를 누르면서 여전히 존버하는 직딩이다.
보기만해도 즐거워지는 감자(물경력 유부녀, 온몸에 남아 있는 인내심을 총 동원해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1년을 채우고 싶다) , 고구마(디자인을 하고 싶지만 갖은 잡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퇴사를 결심한다), 소라게(서울대를 나오고 대기업, 중견기업에서 잘나가던 꼰대, 창업을 했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가리비(소라게의 와이프, 부부는 일심동체다)가 등장하는 만화를 따라가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진다.
부서이동으로 아주 먼거리를 출퇴근에 시달리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갑자기 사무실 이전을 통보받은 감자의 분노가 이해된다. 원거리 출퇴근을 시작하게 된 나에게 주변사람들은 사리바와 소라게처럼 조금 늦게 출근하고 빨리 퇴근하면 되지 않겠냐며 위로를 했다. 하지만, 위로의 기간의 길지 않다. 늦은 출근과 빠른 퇴근으로 업무의 공백이라도 생기는 날에게는 모든 화살이 '성실하지 못한 근무태도'라는 꼬리를 달고 날아온다. 퇴사할 계획이 없다면 직장이 집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고단한 직딩의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편집실 라꾸라꾸 지박령에서 벗어나고 싶어 퇴사한 첫직장에서부터 망해서 어쩔 수 없었던 퇴사와 사내 왕따를 견디지 못해 그만둔 회사 등 어쩔 수 없는 감자의 퇴사사유를 읽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폭발한다. 이유가 없는 퇴사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이유없이 '죄인' 모드가 되어야 하는 직딩의 삶이 서글프다.
소라게와 가리비의 만행을 담은 에피소드에서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감자와 고구마의 퇴사와 서로를 격려하는 에피소드에서는 부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직장인 대공감 웹툰 작가 감자의 리얼 퇴사 스토리를 담고 있는 퇴근하기 좋은 날은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는 월급 노예인 나에게 30대 물경력 유부녀 감자의 당당한 사표 투척의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책이었다.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회사 생활이었다고, 회사가 그리워지고 기억 왜곡이 일어날 때마다 이 책을 읽는다" (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