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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뭐랄까,,, 알 수 없는 여운이 진하게 남는 글이었다. 초반 책장이 넘어가지 않음을 투걸거리며 읽었던 나의 조급함에 숨고 싶어진다. 각자의 삶이 이유가 있겠으나, 결국 삶의 이유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이유임을 알게 한다.
1973년 스톡홀름의 온갖 쓰레기가 떠다니는 파트브렌 호수에 팔다리가 절단된 시체가 떠오르는 것으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순한 살인사건을 추리하는 소설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배신을 유도했지만, 그 배신의 현장을 목도하고 좌절하는 인데베토우의 유령, 원칙주의자 수사관 세실 빙에
"제 지나온 인생을 보니 원인과 결과가 단단히 얽혀 있더군요. 제가 병에 걸렸을 때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했던 행동을 추동한 건 젊은 시절 제가 고수했던 이상이었습니다." (p.476)
티푸스가 창궐하는 지옥같은 불라디슬라브호에서 살아남아, 삶에 대한 가치를 부정하고 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외팔이 방범관 예안 카르델
"심연의 앞에 서 있을 때 손으로 감싸고 있던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에서 위안을 찾는다고 했지. 그렇다면 지금은 깜깜한 어둠뿐인가?" (p.479)
유희 같은 사기와 도박판의 토끼, 어설픈 외과의 그리고 살기 위한 몸부림 크리스토페 블릭스
"그제야 그가 비명을 질렀단다. 그러나 그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어니었어.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그가 눈을 뜨고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을 때야." (p.215)
붉은 수닭의 불길속을 헤쳐나가는 딸, 소녀, 여자 그리고 엄마. 악마같은 남자들로부터 짓밟히고 삶을 포기한 남자로부터 구원 받는 안나 스티나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저도 모르게 배에 손을 얹고 아이의 심장이 뛰는 감각을 느끼죠. 크리스토페르가 아기의 목숨을 구하는 동시에 제 목숨도 구해준 거에요." (p.470)
괴물이 되도록 길러졌고 결국 괴물이 되어버린, 조급함에 인간이 될 기회를 잃어버린 한남자 요한네스 발크와 다니엘 데발
"사랑이었나, 요한네스? 그를 사랑했나?
그게 그렇게 놀랍습니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괴물이 어느날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그런 김정을 발견한게 이상합니까?" (p.465)
그리고 모든 이들의 연결고리, 아름다운 금발과 의문의 문장, 빛과 말, 사지를 잃어버린 파트브렌 호수의 의문의 변사체 칼 요한
짧지 않은 서사에 등장인물들이 마치 한몸처럼 엮여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이한 모습들, 그리고 그런 결과를 맞닥트릴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같은 사랑이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플라우트스가 포에니전쟁에서 남긴 말이지요. '사람은 만인에게 늑대다' (중략) 우리는 언제나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남의 약점을 찾아다니는 늑대일까요?" (p.92)
모든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1부를 읽을 때는 더딘 속도와 약간의 지루함으로 완독에 실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칼 요한을 등장을 뒤로 하고 인물간의 관계가 하나씩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흥미와 긴장감이 점점 올라간다.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는 듯 하지만 서사의 중요한 소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각각의 인물들의 심리와 그들과 연결된 사람을 쫓아가는 시선만으로도 흥미롭다. 애절한 사랑이거나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 애증을 따라 서로가 얽혀 있다. 어쩌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들이 서서히 욕망을 쫓는 본능만이 남은 늑대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