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 바탈랴 지음, 김정아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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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가볍게 읽히리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햇는데 접해보지 않았던 브라질 소설인 탓인지 – 이름이 너무 어려웠다 – 책장을 다시 앞뒤로 넘겨가며 읽기를 반복했다.

“어릴 적에는 플루트 신동으로, 결혼해서는 요리사와 디자이너로, 그리고 작가로 성공할 수도 있었다...”

이책은 세상의 벽에 부딪치지 않았다면, 어쩌면 무언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삶의 대한 욕구를 차단당한 여성 에우리지시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뒤편의 소개글 한줄이 주인공 에우리지시의 인생을 한문장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에우리지시의 노력과 좌절을 읽을 수 있었다. 영이, 순이와 같은 귀에 익숙한 이름이 주인공의 이름이었다면 오래되지 않은 과거 우리나라의 여성들의 핏박 받던 삶을 쓰고 있는 글이라고 해도 거부감이 들지 않을 글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제한당하고, 사실이 아닌, 설사 사실이었다 해도 어이없는 이유로 결혼생활 내내 남편의 ‘통곡과 위스키의 밤’을 견뎌내야 하는 에우리지시의 삶이 안타깝다. 그녀는 에우리지시가 아니기를 바라는 일부라는 상상을 하며 그녀가 원하지 않았던 고단한 삶을 견뎌내고 있다.

어릴적 풍부한 재능을 보였던 풀루트는 좋은 집에 시집갈 수 있는 준비된 신부의 요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거절당하고, 다소곳하게 남편을 기다리고 아이들만 얌전하게 키울 수 있는 아내를 원했던 안테노르의 눈에 들어 결혼한 이후에는 아내, 엄마의 역할을 차단한 남편 때문에 요리사와 디자이너로서의 즐거운 삶을 포기해야 했다. ‘가부장적인 가정’이라는 조건은 말도 안되는 이 모든 일을 사실로 만들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학교에서의 고문과도 같은 시간, 플루트라는 열병, 유혹의 드라마, 청과전에서의 공상, 주방에서의 성취, 그리고 봉제라는 모험에 이르기까지. 에우리지시는 ‘에우리지시가 에우리지시가 아니기를 바라는 에우리지시의 일부’에게 항복을 선언한 것이었다.” (p.108)

여기에 자신의 삶을 거대한 벽에게 항복한 에우리지시와 달리 ‘가출’이라는 모험을 감행한 또 한사람이 등장한다. 에우리지시의 언니, 기다 구스망의 이야기다, 그녀는 가출을 통해 부모로부터 탈출하고, 부자집에서 곱게 자란 남편 마르쿠스를 구하는 듯 하였으나 그녀 또한 세상의 부정을 바탕으로 키워진 남편의 나약함과 그녀에게 남겨진 아들 프란시스쿠를 위해 자의반 타의반 어둠에 그녀를 내 던지게 된다.

“인생이란 그 놀이와도 같아, 에우리지시. 우리는 모든 걸 다 잘해내고 있다고 착각하곤 하지. 하지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눈이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맞히지 못하게 돼.” (p.123)

원하지 않게 주체적이지 못한 삶을 살지못하는 여성들의 삶을 다양하게 그리고 있는 글이다. 에우리지시, 기다, 에울랄리아, 젤리아... 더디게 읽히는 책이지만 그녀들의 삶이 녹녹치 않음에 생각이 많아진다.

무언가가 됐을 수도 있는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 여성이라는 이유 많으로 많은 걸 포기하게 하고, 그 이유로 서로가 질투하며 살아가는 세상. 그리고 이런 세상을 아직도 견디고 있는 여성들이 뚫기 힘든 유리천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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