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배송된 책의 포장을 뜯자마자 지배자의 손바닥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힘없고 연약한 생명체를 표현하고 있는 듯한 뭔가 음침한 표지가 나를 맞는다. 소설속의 내용과 찰떡같이 들어맞는 많은 이야기와 복선을 담고 있는 표지다.

만약 내가 하이무라 야마토의 먹잇감이었다면 벗어날 수 있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으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쫄깃한 긴장감이나 스릴이 있는 글은 아니었지만, 양파껍질을 까듯 마사야의 눈으로 연쇄살인범 야마토의 인생을 쫓는 심리게임을 연상할 수 있는 글이었다. 하이무라 야마토의 손바닥에서 견뎌내고 벗어난 마사야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평생, 그 남자를 잊을 수 없다. 새삼스레 확신한다. 그 남자의 환영을 좇으면서, 이렇게 남은 인생을 무위하게 보낼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남자의 프로다. 돌멩이처럼 차갑고 무거운 죄를 품은, 무참한 포로다." (p.8 프롤로그)

어린시절 신동으로 불리다가 고등학교 이후 그저그런 학생이 되어 삼류대학에 겨우 입학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무기력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그들에게 군림하는 것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가케이 마사야로 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어느날 마사야 앞으로 전달된 의문의 편지 한통. 마사야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연쇄살인범 하이무라 야마토. 그는 일본에서 일어난 전후 최대 규모의 연쇄살인의 당사자로 그가 저지른 많은 살인중 확실한 9건의 살인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사형이 확정된 후 항소중인 미결수다. 살인을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유희처럼 저지른 연쇄살인범이다.

마사야는 구치소에서 만난 야마토를 "이런 장소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누구나 영화배우 같은 느낌의 기품 있는 미남자로 생각할 것이다.(p.27)"라고 말한다. 야마토의 비정상적인 흡인력을 표현하는 한문장이다.

연쇄살인범 야마토는 편지를 받고 찾아온 마사야를 마사야가 조정하기에 이른다. 물론 마사야는 이사실을 알 수 없다. 야마토의 비정상적인 흡인력에 이끌려 다른 사건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사건을 그의 말대로 '누명'이라는 전제하에 조사를 하기에 이른다. 야마토의 마리오네트처럼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알 수 없는 살인충동을 느끼는 지경에 이른다. 다행스럽게도 마사야는 마주친 진실과 야마토가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인해 야마토에게 전염된 살인범이 될 위기를 극복한다.

"나도 마지막으로 하나를 말해주지. 거짓말을 할 때는 9할 정도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좋아. 나머지 1할만 거짓말을 하는게 요령이야." (p.354)

엽기살인범, 연쇄살인귀, 질서형 살인범, 연기성 인격장애자로 불리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마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 그리고 그에게 스며드는 한 사람. 연쇄살인범은 결손이 있는 아이들을 택해 심리적인 지배자로 군림한다. 가면을 쓰고 있는 연쇄살인마는 자신이 택한 범죄대상 뿐만아니라 계획적이고 완전한 범죄실행을 위해 주변인을 설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결과 그를 알고 있는 이웃들이 24명을 죽인 연쇄살인마의 구명을 청구하는 희극이 연출되기 한다.

"뉴스에서 자주 인터뷰하는 사람이 말하잖습니까. '설마 그 사람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는데, 겉모습만 봐서는 모르는 법이군요'라고 그야말로 딱 그거였조.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하이무라 씨를 좋아했으니까요." (p.135)

불우하게 자란 야마토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모두가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사냥감을 탐색하고, 길들여 사냥하고, 사냥한 아이들을 기록하듯 자신의 시야에 보관하는 야마토의 잔혹한 범죄는 독자로 하여금 범죄의 잔혹함에 치를 떨게 만든다. 나도 선량한 피해자라는 듯이 주변을 설득하는 그를 보면서 독자들은 '혹시 나의 주변에도'라는 음침한 생각에 이르게 된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연쇄살인범의 검은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오롯이 당신의 선택이다

'살인도 전염이 될 수 있나?' 심신미약의 상태라면 몇번의 대화만으로도 '살인도 전염이 될 수 있다!'로 생각이 바뀌는 범죄자에 대해 상상하고 있는 보편적인 상식을 뒤집는 글이었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던 구시키 리우의 "사형에 이르는 병" 또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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