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별하는 법을 모르는데 이별하고 있다
김정한 지음 / 미래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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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하루하루 버티는 느낌인가요?' 라는 카피에 홀딱 반해 선택한 책이다. 매일매일이 힘겨운 것은 아니지만, 종종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기 보다는 버틴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느낌이다.

어렸을 때는 공부하느라, 청춘이었을 때는 청춘을 불사르며 노느라,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이를 키우느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적당히 나이를 먹은 지금 아이는 내 품을 떠나 독립할 준비를 하고, 직장은 어느덧 퇴직할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지치고 힘겹다는 생각과 함께 하루하루 버텨낸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이별은 다른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과의 이별이지 않을까 싶다.

잔잔하게 쓰여진 산문 같은 글은 시처럼 읽힌다. 저자 소개에 있던 시인과 에세이스트의 경계를 넘나 든다는 소개글을 떠올리게 된다. 계절을 따라가며 써내려간 글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환한 봄에서 부터 가장 예쁠 때 자신을 버리는 낙엽을 노래할 때까지...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의 햇살 한줌, 바람 한조각을 느끼라고 말한다.

"과거에 밑줄을 긋지 말고 현대에 밑줄을 긋자. 아프게 살이온 검은 날들은 잊고, 살아갈 날들을 초록으로 물들이자. 내가 꿈꾸는 그곳으로 가자. 위대한 나를 만나자. 나의 기적을 믿자." (p.34)

시처럼 예쁜 글이다. 가난을 버텨내고, 외뢰움을 견디고, 그리움을 밀어내며 애쓰고 있는 삶을 담담하게 써내려 가고 있다. 버티면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있음을, 살아감을, 살아냄을 감사한다. 글을 읽는 동안 가슴이 몽글몽글 해진다. 모진 풍파에 깍여 나가 동글동글해진 몽돌처럼 그간의 시간에 이유없는 뾰족함이 깍여 나간다.

"새로운 길을 가리라고. 푹푹 빠지면서도 부지런히 길을 내는 바람처럼, 나의 길을 만들어 가리라고. 상처의 결을 더듬고 보듬으며 나의 길을 가리라고." (p.101)

아무리 마음을 다독여도 땅으로 푹푹꺼질 것 같이 우울한 날이 있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무기력하고 고독함 속에서 버텨내고 있다. 나만 외로운 것 같고, 혼자만 왕따가 된 것 같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싫어지는 날이 있다. 주변의 밝은 기운이 웅성거림으로 변해 귀속을 웅웅거린다. 알아들을 수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다. 늘 아둥바둥 하고 있지만 한결같이 제자리인 내 삶이 문득 서글퍼 진다.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나. 불현듯 찾아온 '작업'을 '몇개월의 식량을 선물 받음'으로 표현했던 문구가 스쳐간다. 진짜로 곤궁해서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았겠지. 대다수 범인들의 삶과 같겠지. 괜찮아 질거야라는 말이 싫어지는 날은 아마도 누군가와의 쓸데없는 비교 끝에 찾아온 일상의 심술일게다.

"오늘따라 '괜찮아 질거야'라는 말이 싫어진다." (p.124)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과 이별은 계절을 따라가는 시간의 공허함과 가난과 외로움을 버텨낸 이를 울게 한다. 공허한 아픔이 느껴지는 글이다. 아픔에서 치유되기 위해 망각을 선택하고 더 짙은 이별을 느낀다. 더많이 사랑하기 위해 추억하고 시간을 들여다 보면서 말이다. 스무살의 겁없는 사랑으로부터 추억으로 남겨진 지금의 사랑까지 그 시간의 소중함을 기억한다. 이별해야 하는데 이별하고 싶지 않은, 이별 할 수 없음을, 이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함이 애잔하다.

"나는 어김없이 그대라는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비린내 나는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는 고래가 되어." (p.173)

책장을 펴자마자 느꼈던 것처럼 끝까지 시처럼 산문처럼 잔잔히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글이다. 이별의 아픔을 쓰고 있는 글임에도 참 예쁘다. 페이지마다 조심스럽게 그려진 편안한 표정의 삽화가 글의 감성을 살려준다. 개인적으로 겨울을 느끼면서 읽기에 좋은 글이었다. 일상에서의 계절은 마음을 다독이고 추스르게 한다. 겨울을 따라가는 모습이 조금은 쓸쓸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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