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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잘 모르지만 - 처음이라서 서툰 보통 어른에게 건네는 마음 다독임
윤정은 지음, 오하이오 그림 / 애플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땐가 부터 어른, 아이의 사이에 '어른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는 어른이지만 아직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는 어른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는 철없이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어른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어떤 뜻이 되었든 간에 나는 어른이가 되고 싶다. 나의 삶을 완벽하게 책임져야 하는 짐에서 살짝 피하고 싶다는 철없음에 기인한 생각일테지만 말이다. 끊임없이 주판알을 튕기는 관계에서 벗어나 그저 좋고 싫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아이로 남고 싶지만, 너무 큰 욕심일 터이니 아주 조금 비껴선 어른이로 살고 싶다.
저자는 자신을 산책하며 흩어지는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걸 좋아하고, 걸으면서 딴생각을 해서 자주 넘어지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착지법을 익히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감탄스럽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여유가 느껴지는 소개글인것 같다. 저자의 삶의 여유로움이 부러워진다.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사는 어른이가 아마도 나의 장래 희망이지 싶다." (p.124)
이 책은 1장 우리는 모두 첫 어른이야 부터 5장 생각보다 생각만큼 괜찮아 등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마다 짧은 에피소드로 담담하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짧은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 글들은 물흐르듯 편하게 읽히고 간간히 삽입되어 있는 삽화는 아직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 가는 이들을 품어주는 듯한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푸념만 늘어놓던 내가, 치기어린 맞장구가 아니라 친구의 고단함과 답답한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친구의 푸념을 가만가만 들어줄 수 있는 어른의 쓸쓸하고 애처로운 삶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나를 좋아해줄 용기, 괜찮다고 생각하는 용기, 쓸쓸하고 안쓰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서글프기도 하지만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 늘어가니 근사하기도 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 집에 빛이 머무는 시간, 짐을 드러낸 공간을 서성이며 여백을 만끽한다." (p.53)
친구의 푸념을 치기어린 맞장구로만 받아 줄 수 없는 건 어른이 되어 생기는 책임감 때문이리라. 어른이된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생계를 책임질 가족이 없다하더라도 나의 삶에는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언제든 도전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청춘을 지나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던,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던지 간에 나의 삶에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 어른인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며 살아가는 무게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좋아하려 하는 것보다 무겁다." (p.68)
어른이 되어 갈수록 나에게 각박해 지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는 적당한 가면을 쓴채 마냥 인자하고 여유로운척 하고 있으면서, 제일 중요한 나에게는 한푼어치의 아량도 없이 빡빡하게 굴곤한다. 지치고 상처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번아웃이라는 말이 있다. 어른이라서 책임감의 무게에 짖눌려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것도 모른채 어렸을 때는 '번아웃 됐다'라는 말을 들어면 의지가 약해서 그러려니 했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번아웃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이번 책읽기를 통해 번아웃되기 전에 나부터 다독거리고 안아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작가의 번아웃 탈출방법이 합정동 산책이었다. 어제 공연관람을 위해 다녀온 합정동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10센치의 은하수 다방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너무 바쁘게 달려갈 필요 없어. 때론 쉬어가도 돼. 그 일을 다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 (p.99)
다 해내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게 맞을까? 괜찮겠지? 괜스레 안절부절하게 되는 글귀다. 나는 심지굳은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첫 어른, 그래서 사는게 서툴다는 글귀가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철부지 어린아이로 있다가 어느 순간 훌쩍 자라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젓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이라 서툴지만, 서툰게 당연하다는 말이 완벽하지 않은 어른으로 살고 있는 내게 용기를 주는 글이었다.
"모두, 첫 어른으로 사느라 수고가 참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