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전일도 사건집
한켠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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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을 찾아드립니다, 탐정 전일도 사건집

제목만 보고, 책을 펼쳐보기 전까지 진심 추리소설인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추리소설이 아닌 추리소설을 가장하고 있는 이웃, 친구.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글이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때 대나무숲에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후련해지고 다시 씩씩하게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곤 하니까 말이다.

탐정 전일도는 의뢰인을 만날 때마다 의뢰자의 사연에 공감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교복을 입거나, 토끼모자를 쓰거나, 패시네이터를 쓰거나 하면서 말이다. 의뢰인을 잘 이해해야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이유로 준비하지만 아마도 단서 보다는 의뢰인에 대한 공감을 위한 마음으로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탐정 전일도에게 의뢰가 들어온 9가지 사건과 전씨 가문의 기원을 재구성한 1편, 모두 1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약결혼을 감행하는 커플, 아이의 사교육비 마련과 노후를 위해 무리하게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는 의뢰인, 학원과 시험에 지친 초등학생, 직장에서 소모되고 있는 것 같아 홧김에 축의금 회수를 의뢰한 비혼의 직장인, 학교쌤의 몹쓸짓을 고발했다가 왕따 당하고 자살한 친구를 둔 중딩, 아이돌을 꿈꾸고 있다가 실패하고 영혼없이 공부하고 있는 공시생 등 우리 이웃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무심한듯 위로해 준다.

"우리 부모님이 저 이렇게 하찮게 살라고 사교육비 들이부은 거 아니에요. 대학은 잘 갔으니까 지금 죽으면 '아쉬운 딸'이 될 수 있는데 이렇게 계속 살면 '어디가서 말도 못 꺼내는 딸'이 된단 말이에요" (p.398)

반복되는 불합격에 지치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엄마, 아빠에게도 말못하는 고민을 안고 차라리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는 의뢰인의 절규다. 부자로 살고 싶은 것도 아니고, 호의호식 하면서 살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저 부모님한테 손안벌리고 살 정도의 수입이라도 생기면 좋겠는데 현실이 녹녹치 않아 괴로운 의뢰인에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느끼게 해준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죠? 막상 입사해 보면 문과 출신 여자? 볼펜 같은 비품이에요. (중략) 입사하면 퇴사하고 싶고 출근하면 퇴근하고 싶은데, 카드값이랑 월세랑 생활비랑 야근이랑 피로랑 이러다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겠다. 잘리면 뭐해 먹고 사나 하는 걱정 때문에 못놀아요."(p.416)

죽을 힘을 다해 취직하고 나면 여자라서, 문과출신이라서,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는 홀홀 단신이라서 직장에서 제대로된 대우를 받기도 쉽지 않다.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할 뿐이다.

추리소설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겪고 있는 일상의 고민들 이었다. 그래도 탐정 전일도를 찾은 의뢰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대나무숲을 만난것 만으로도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지도 못하고 답답하고 아픈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하면서, 나도 누군가의 대나숲이 되어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책을 덮는다.

"괜찮아, 그럴수도 있어, 네 잘못이 아니야"

작가는 9편의 사건으로 구성한 이유가 10번 탐정서비스 이용후, 무료 1번을 외치고 새로운 사건을 수임받기 위해서라고 농담을 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탐정 전도일 사건집 2권이 나오기전에 의뢰할 사건을 고민해 봐야 겠다.

격하게 공감되는 일상의 고민을 담은 한편 같은 10편의 단편 구성되어 있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너무 가볍지 않은 소설책이 필요하다면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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