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남편은 빼겠습니다
아인잠 지음 / 유노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결혼, 이혼 & 졸혼

졸혼은 언젠가 유명 연예인이 TV프로에서 본인이 졸혼 상태임을 커밍아웃하고 나서 급격하게 관심받는 키워드로 등장한 단어다.

결혼졸업이라, 결혼을 쫑 내는 방법은 서류에 도장찍고 영원히 바이바이하는 이혼밖에 없는 줄 알고 있다가 해성처럼 등장한 졸혼은 한동한 부부사이의 핫한 이야기거리 였다.

법적으로 여기저기 묶여있는탓에 서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굴뚝 같아도 묶여있어만 했던 사랑이 식어버린 부부들에게 졸혼은 자녀에게 상처도 덜주고, 골치아픈 법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부부들이 '황혼의 졸혼'을 꿈꾼다. 이혼보다는 덜 부담스러우면서, 어쩌면 길게 남은 나의 인생을 안개속에서 꺼내줄지도 모르니까.

나는 아직까지 졸혼을 꿈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편이 아주아주 미워질때 가끔 졸혼을 떠올리며 언제쯤이 좋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저자의 필명 아인잠은 외로움을 가르키는 말로 내면과 하나 되는 사람을 의미하는 독일어라고 한다. 결혼 13년차, 졸혼 1년차를 맞은 저자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필명이리라.

의외로 결혼한 사람중에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종종 외롭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결혼하기전 별도 달도 다 따다줄것 같았던 남편은 어느새 쇼파지박령이 되었고, 남의 편을 넘어서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남이 되어 있다. 아이들은 자라서 엄마품을 떠나버린 모습이 결혼하지 20여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아내, 엄마, 며느리, 딸인 나의 모습이다.

책속의 맥주와 신혼의 공통점을 보고 격하게 공감한다. '몇 모금 마시면 미지근해진다' 불같이 사랑하고 만났다 헤어지는게 아쉬워 죽을 때까지 사랑하기로 맹세하고 결혼했지만, 슬프게도 불같은 사랑의 유효기간은 매우 짧다.

결혼한지 20년이 넘은 나도 신혼초 매일매일 다툼의 주제였던 치약 가운데 짜기를 여전히 못고치고 있고, 우리 남편도 20년째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던져 놓는다. 다시 신을 것도 아니면서 왜 이 버릇을 못고치는지 모르겠다.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관은 더더군다나 다를터이니 어쩌면 적당히 타협하고 부대끼면서 사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을 지도 모른다.

불평불만은 잔뜩 품고 있으면서 쉽게 용기내지 못하는(아직은 참을만하다) 나를 뒤돌아 보면서, 아인잠님의 용기가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우리 시댁의 명절 풍경도 다르지 않다.

명절 시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습에 나 역시 명절때마다 우울해 진다. 물론 귀성길 부부싸움은 필수코스가 된지 오래다.

딸들은 이제나 저제나 점심도 지나기전부터 언제 오나를 기다리시면서, 며느리는 명절 당일 저녁의 귀성길도 막아서시기 일쑤다. 왜? 시누이들이 친정에 오면 맞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아무도 없으면 안되니까, 이게 내가 명절에 울엄마를 빨리 보러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야하는게 이해되지 않는다. 박차고 나올 수 있겠으나 소심덩어리라 항상 마음속으로만 박차고 나온다.

오랜 만에 보는 아들 얼굴은 항상 삐쩍말라있고, 며느리는 항상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씀 역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손하나 까딱 안하는 아드님과 함께 사는 며느리한테, 며느리가 직장 다니느라 밥도 잘 안해줘서 아들 얼굴이 안됐다는 망언을 서슴없이 하신다. 에효~ 그래서 난 명절 때마다 참을 인자를 수백개씩 쓰고 온다. 참자, 참자, 참자, 시골 어르신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 시키면서 말이다.

쳅터마다 던져진 질문이 마음을 흔든다.

저 질문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마음속깊이 아인잠님처럼 용기내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워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하나. 당신이라는 가장 완벽한 환상

넌 어떨 때가 가장 행복해?

난, 이렇게 마주 보고 있을 때

둘. 신혼, 처절한 전쟁의 서막

당신, 이러려고 나랑 결혼했어?

너만 힘든 줄 알아? 나도 힘들어!

셋. 우리 사이에 출구는 없는 걸까

당신, 어차피 내 말 듣지도 않잖아.

알았어. 됐으니까 그만하자.

넷. 다행이야, 잊고 있던 내가 생각나서

줄곧 여기 있었구나....

이제 내 목소리가 들리니?

다섯. 오늘부턴 내 인생이 먼저입니다.

너, 계속 남편과 살고 싶니?

아니요! 이젠 내 인생을 살 거예요.

부부간의 어려움이 비단 아내쪽에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이런 부당한 대우들의 이유가 아직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남아있는 불평등과도 맞물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여자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깊이 공감하면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책읽기를 끝내며, 아이잠님의 용기있는 독립을 한번 더 힘차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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