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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이야기 - 시대를 움직인 뒤틀린 정의 ㅣ 예문아카이브 역사 사리즈
월러 뉴웰 지음, 우진하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인터넷이 갓 등장했던 그때, 인류의 미래가 매우 장미빛으로 보이던 시기가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인터넷이 새로운 세상의 제너두가 될 것이며,
빈부귀천을 초월하여 정보에 접근하게 됨으로서 결국 빈부귀천 그 자체가 사라지게 되어 전세계가 민주화되어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 말했다.
sns로 자살 테러리스트 모집하는 현실에서 들으면 코웃음만 나오는 이야기이다.
결국 기술은 인간에게 쓰이는 것이라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의 기반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육체는 10만년전과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지금 세상에 나타나는 많은 국면들이 앞으로의 세상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인터넷과 민주주의로 인해 금방 사라질 것 같았던 폭군 역시 엄연히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고찰은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의 핵심은 폭군은 나빠요 같은 뻔한 소리가 아니라,
(만약 이 내용으로 몇백 페이지를 채웠다면 그게 나무에 대한 인간의 폭정이겠지.)
폭군, 폭정의 형태를 셋으로 나눈다음, 그 폭정간에 우열을 정한 것이다.
전형, 개혁형, 영원불멸형 이렇게 셋을 나눈후 최악은 영원불멸형이라 주장한다.
이는 최악과 차악을 나눈 것으로 현실에는 악이 존재할 것이고 그걸 근절하는건 무리란 현실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이 관점은 최악을 막기 위해서라면 차악을 용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저자는 어떤 폭정도 나쁘고 민주주의만이 선한 정치체제라고 선을 쳐두긴 하지만 가이드라인일뿐.)
이는 논란이 있을만한 주장이다.
다시 말해 is를 막기 위해서 알아사드 정권을 용인하거나 오히려 도와야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독재는 나쁘고 모든 나라는 민주화 되어야한다! 라는 서구권의 인식이 중동의 지옥을 열었다는 것은 부정할수가 없다.
독재정권을 무너트린다고 그곳에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아니다.
그곳 주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말하는 사람 대신 예언자를 비난하는 자를 참수하라는 사람을 뽑고
남녀평등을 말하는 사람대신 "명분있는 살인은 신 앞에 정당하지만 명분있는 간통이란 있을수 없다."며 명예살인을 주장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말이다.
최악 대신 차악이란 말을 다시 말하면, 영원불멸형 폭정을 선택할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해선 안되고 전형적 폭군에게 지배되어야한다는 말이 된다.
현실을 살피고 나온 주장이긴 하나 한때 독재자들의 지배를 겪었던 한국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불편하게 들릴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원래도 폭정을 정당화시키는 주명분으로 독재자가 힘으로 억눌러야 그 사회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쓰이니까 말이다.
이 책이 말하는 것에 현실의 무게가 실려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모든 주장과 모든 논거를 긍정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특히 주장에 역사를 끼워맞추는 식의 해석이 몇군데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책의 저자가 정치학자라는 것을 감안해야할터이지만, 이런 부분을 읽어낸 독자는 책 자체의 신용을 깍을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지만 폭군과 독재는 지금 존재하듯이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 현실로 인해 폭정을 진지하게 고찰하고 분류를 시도한 이 책의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