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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 세상을 뒤흔든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윤석남 그림, 김이경 글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평점 :
얼마 전, 국립 현대 미술관(MMCA) 서울관에 다녀왔다.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은 1900년대부터 동시대 작품까지 모은 전시다. 출구로 나오는데 마지막 작품 윤석남의 <어머니 2- 딸과 아들>이 있었다. 수많은 남자 작가들 사이에 자리 잡은 것만으로 울컥했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윤석남 작가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초상화를 그린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윤석남 작가는 70세가 넘어 서양 안료를 버리고 채색화를 익혔다 한다. 39년생이신데(만82세) 뉴스 사진 속 작품과 같은 포즈를 취한 모습이 얼마나 멋지신지. 김이경 작가와 함께 작업하고 출판한 동명의 책을 읽었다.
책은 그림 속 주인공 14명의 서사가 자세히 펼쳐진다. 교사, 공장 노동자, 간호사, 해녀, 기생, 전업주부 등 처지는 모두 달랐지만, 독립에 대한 신념과 의지는 모두 같았다. 나는 특히 남자현의 일생에 가슴이 뛰었다. 처음엔 영화 <암살>의 안옥윤 (전지현 분) 모티브가 된 인물이라 하여 관심이 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일생은 영화와는 전혀 달랐다. 세 번씩이나 손가락을 끊어 혈서를 쓰며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린 남자현. 우리는 왜 안중근 의사의 짧은 네 번째 손가락만 기억했는지 부끄러웠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독립은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시어머니 장례와 아들의 혼사를 연이어 치르자, ‘때가 되었다고’ 분연히 일어선 그녀는 마흔일곱이란 나이에 만주로 떠났다. 외국에서 독립 대원들을 먹고 입히는 일은 작은 나라를 경영하는 것과 같이 고되고 큰일이었다. 하지만 부인네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는 자랑도 없이 묵묵히 일했다고 기록한다.
현재 총 1만 6,000여 명의 전체 독립유공자 중 여성 비율은 여전히 3%가 안 된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공적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한다. 그런 의미에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출판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일제 뿐 아니라 공고한 가부장제와도 맞서 싸워야 했던 상황이 자주 나온다. 정칠성의 경우 ‘기생 출신’이란 선입견과도 싸워야 했다. 소설 <체공녀 강주룡>으로 낯익은 강주룡의 을밀대 투쟁, 구한말 대신으로 유일하게 독립운동을 했던 시아버지 김가진의 뜻을 이은 정정화,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철학을 위해 펜 대신 총을 든 박차정 등 한 사람 한 사람의 굳건한 나라 사랑과 뜨거운 열정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 뿐 만이니라 책 곳곳에 만세 운동 등 시위에 많은 여학교가 참여했다고 나온다.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어린 여학생들에게도 머리를 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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