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김현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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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은 언제나 간호사와 함께 이루어진다.  수련시절에는 병동에 가면 언제나 간호사들이 있었고, 각자의 주어진 업무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종합병원의 외과과장 시절에도 외래 진료실과 중환자실, 그리고 병동에서 언제나 간호사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환자를 돌보았다.  그리고, 현재 개인의원의 외래 진료실에서도 언제나 접수실을 중심으로 내부를 분주히 돌아다니며 환자를 돌보고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들과 함께 진료한다.  의료는 전문인력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시스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기에,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다양한 의료인들이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각자가 따로 존재해서는 역할을 수행할 없는 서로 의존적인 관계이다.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 안에 머물러야만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 의사의 입장에서였다.  주치의의 입장에서 환자가 입원하고, 한동안 머물며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거나 마지막 숨을 쉬기까지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들을 보는 시선, 그들과 주고받은 말들, 그리고 느낌들은 언제나 의사의 말과 글을 통해 서술되었다.  의료시스템의 정점에 있기에, 의사들의 글은 언제나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상대와 동등해지려 애써도, 어쩔 없이 시선은 점점 아래를 향할 밖에 없다.  


  병동은 언제나 환자들의 공간 중심에 존재한다.  안에서 분주하게 병실을 오가고 환자에 닿는 사람들은 간호사들이다.  사실,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있는 의료인이다.  병동에서는 8시간마다, 중환자실에서는 1시간마다 활력징후를 체크하고 시간이 정해진 약을 챙겨주는 일만으로도 간호사는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다.  그러기에 간호사의 시선은 거의 같은 높이로 마주한다.  마주하는 시선에서 나오는 말과 쓰여지는 역시 가깝고 균형감이 살아 있다.  책을 읽는 어렵지 않고 막힘이 없었던 것은, 역시 의료인으로 거의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이유는 시선의 기울기가 작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공감하는 느낌 때문이다.  환자와 병원을 바라보는 의사로서의 시선과 간호사로서의 시선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책은 그러한 시선의 차이를 느끼게 하고, 작은 기울기나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상대에게 다가갈 있는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간호사들은 언제나 힘들어했다.  환자를 돌보는 병동업무와 병원행정의 일부를 담당해야 하고, 책에서 나오듯 여러 강연이나 모임에 동원되어야 했다.  내가 있었던 병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에 소개된 간호사들의 고충과 노고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한 의료인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감할 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나 고충들은 아직 온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2018 현재 간호사 이직률은 평균 15.5% 이르는데 이는 다른 병원내 직종 이직률의 2.3배에 달한다.  1-3년의 저연차 간호사의 비율은 66%이다.  통계가 드러내는 이러한 사실은 간호사 업무환경의 고됨과 열악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리고, 책의 저자인 간호사는 그런 현실을 바꿔보려 노력했다가 매너리즘의 깊은 뿌리와 병원 권력의 무관심에 절망하며 20년이 넘도록 일했던 병원을 그만 둔다.  권위에 의존한 철저한 보수적 분위기를 유지하고, 사명감을 내세워 희생을 강요하는 뿌리깊은 부당함이 언제나 존재하는 곳이 병원이다.


  20년이 넘도록 중환자실을 비롯한 거대한 3 병원 시스템에서 일해 왔던 저자를 만나면 의사와 간호사로서 동등한 악수와 대화가 가능할까?  조금은 자신없어졌다. 의료시스템의 상위에 위치한 의사의 입장이지만, 치열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오며 경험으로 축적한 간호사의 노련함을, 같은 의료인으로서 존중해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방을 내고 적극적인 치료를 했던 주치의로서 활동했지만, 어쩔 없는 시선의 기울기와 거리감을 극복할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일이란 그저, 고생하셨다고, 수고하고 어려운 일을 오랜시간 감내하셨다고 마음으로 다독이고 존중하는 뿐이다.  내가 직접 들어 알고, 은연 중에 느꼈던 간호사의 복잡다단한 현실이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수고하셨다고 마음의 박수를 치면서, 나는 같은 의료인으로서 함께 하려 했었는가를 잠시 되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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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사생활 - 수술대 위에서 기록한 신경외과 의사의 그림일기
김정욱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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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본능처럼 움직이면, 영혼은 몸에서 정도 떨어진 몸에 겨우 달라붙어 따라다녔다.  수술방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고 나오면, 전등 스위치를 켰다 것처럼 창밖은 어두워 있었다.  병동을 둘러보고 오더를 내고 남은 일들을 처리한 전화기 쪽에 머리를 두고 서둘러 잠을 청했다.  그런 나날의 연속을 견뎌낼 있는 무언가가 절실했다.  나는 그림을 그렸다.


  외과 레지던트를 하기 나는 인턴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시간동안 찍어 사진을 인화해서, 같은 기본사이즈 크기의 드로잉북에 연필로 그대로 그려나갔다.  주말동안 응급대기를 하며 밀린 차트들을 정리하다가 머리가 무거워지면, 나는 드로잉북과 연필을 꺼내 사진 풍경들을 그대로 그렸다.  3 반의 막막하고 무거운 시간을 견딜 있었던 소소한 딴짓들 하나는, 그림이었다.  그렇게 그린 그림들을 모아 드로잉북 권을 남겼다.  지금은 선이 번지지 않게 접착 아스테이지를 붙여 추억으로 보관하고 있다.  


  , 책을 신경외과 선생님처럼 글도 같이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보지만, 나는 레지던트를 마칠 즈음부터 낙서하듯 글을 시작했다.  지금은 나의 일상의 딴짓 하나가 글을 쓰는 일이지만, 레지던트 당시의 나는 대신 그림이 일상의 딴짓이었던 셈이다.  


  직업적 일상을 이어나가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딴짓을 했던 이유는, 내가 가진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몸과 영혼이 따로 분리될 같은 정신없는 일상에 매몰되다 자칫 내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것을 잃어버릴까 다잡는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틈틈이 몸부림을 쳐서 지금은 걱정하던 그것을 놓치지 않고 간직하고 있느냐 물으면, 분명하게 대답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글로 나를 끊임없이 두르며 모르겠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 사소한 몸부림을 나는 책을 읽으며 느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의사도 나와 비슷한 몸부림을 겪고 있구나 생각하며, 반가웠고 공감했다.  


  신경외과라는, 정신과 체력의 극한을 시험당하는 과의 영역에서 이런 글과 그림을 만들어냈다는 데에 경의를 표한다.  그만큼, 의사는 어쩌면 절박했을지 모른다.  단순히 수련을 마쳐야 한다는 절박함이 아니라, 수련의 극한 안에서도 자신이 놓지 말아야 , 의사와 인간으로서의 어떤 기본과 감정 같은 것들에 대한 절박함 말이다.  정신과 의사에의 꿈만큼 글은 따뜻하고, 신경외과 의사로 수련하면서 서전의 길만큼 그림은 정교하다.  따뜻하고 정교함은 나직하고 담담한데, 아래에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어쩌면 책을 읽은 마음의 전이일 있다.  중요한 것은, 수련이라는 혹독한 환경 안에서도 의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잃지 않고 간직해내었다는 점이다.  


  지금쯤 수련을 마치고 신경외과 전문의가 되었을 그는, 마음이 따뜻하고 탄탄한 기본으로 무장한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 어딘가에서 집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앞날에 견고하고 넓은 가슴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수련때와는 다른 현실의 수많은 파도 앞에서 그의 마음이 온기를 잃지 않고 유연하길 바란다.  극한의 시간 속에서 그려온 그림 선들이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따뜻하지만 견뎌내야 했던 문장들이 깊은 사유를 겸비하고 누군가를 안아주기를 바란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미 그럴 있을 능력을 그는 자신의 책에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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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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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나서 줄도 독후감을 남길 없었던 소설은 최은영 작가의 전작 소설집쇼코의 미소였다.  소설 안에서 풍부하게 펼쳐지는 순전한 여성적 감각의 흐름은 중년남성인 나로서는 절대 닿아 없는 침범 불가의 영역이었다.  섬세한 감정의 표현 역시, 내가 무어라 말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붙이는 일이었다.  이해하되, 새로운 세계에의 경험같았다.  바라보되, 노력해서 닿아야 목표점 같았다.  


  이번 소설집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시선과 경험에서 드러낼 있는 소재와 관계들이 가득하다.  섬세한 여성의 시선으로만 글로 만들어낼 있는 묘사와 문장들이 가득하다.  마치, 섬세하고 깊은 시선을 가진 여성들이라야 정도의 소설을 써내려갈 있다고 주장하는 같다.  지극히 여성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해시킨다. 


  효진이를 둘러싼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적 환경은, 그럴 있을 거라는 이해를 하면서도 설정이 너무 극단적이기에 불필요하게 마음이 불편해진다.  겨우 3주간 데이트를 했던 일레인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로 가는 랄도의 철없음에서, 작가는 남자들의 찌질함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보았다.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말이다.  싸이월드, 프리챌 등등의 등장은,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 사람들의 향수를 은은하게 띄운다.  그리고, 소설마다 등장하는 여자와 여자의 관계 안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관계 역시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경험한 것들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나직하게 묘사한다.


  소설의 압권은 관계 안에서 흐르는 감정의 묘사들이다.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 그것을 어떻게 말로 드러내고 글로 표현할 있을까 잠시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포기한다.  굳이 말이나 글로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들이 대부분이고, 그런 고민들은 대개 아주 잠깐 스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사소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기어이 글로 묘사해 낸다.  관계 안에서 흐르는 감정이 소설의 살과 뼈대가 됨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도, ‘, 내가 언젠가 느꼈던 뭐라 하지 못할 감정을 이렇게 표현해내는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낼 밖에 없다.  묘사는 깊이와 세밀함을 담고 있으면서도 담담하면서도 간결하다.  단지 문장 하나에서, 내가 드러낼 없었던 감정이나 느낌들이 팝콘 터지듯 존재를 불쑥 드러낸다.  작가는 감정묘사의 뛰어난 마법사이다.  


  독후감은 여기까지이다.  여성적 감성의 깊고 너른 바다 앞에서 나는 빠져들지 못하고 바라본다.  바다는 자체로 해석이 필요없는 거대한 존재이다.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우리는 없다.  남성독자로서 소설을 읽는 일은 그러하다.  발을 담그지 못하고, 몸을 내던지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바다를 보는 기분..  존재하고 있음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시 들여다보고 이해를 받아들여야 하는 작업.  오로지 작가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드럽고 나직하고 단단함, 세상 모든 현상과 말들을 넘어서 여성이라는 존재의 모습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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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장수 이신방전 - 남원성 사람들
고형권 지음 / 구름바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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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의 이야기는 영화적이다.  역사적 개연성과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일들이 만나 납득과 재미가 가득 담긴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한다.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지금 우리에게 있지 않다.  400년도 오래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지금은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다.  없는 얼굴과 체격으로 뼈와 살을 만들어 붙이고, 숨을 불어 넣었다.  그의 발이 되어, 시절로 재구성된 현장들을 걸었다.  그의 마음이 되어, 품을 있는 용기와 결단과 연정을 시간 안에 흘려 넣었다.  


  이신방이라는 인물은 실재했고,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명나라 장수로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기록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실만으로 그의 행적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흩어져 있는 나무가지들을 줍듯, 그의 행적을 모은다.  마침내, 그의 일대기를 재구성 해낸다.  마치, 편의 영화를 만들어 같다. 


  하나의 사실 아래 조각조각 흩어진 얼마 남지 않은 흔적들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같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 그것은 읽는 사람들을 의식해야 하는 일이다.  최대의 개연성을 두고, 위에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살을 붙여야 한다.  재구성은 납득할 있어야 하고, 이야기는 재밌어야 한다.  그것이, 이신방의 주변에서 보이는 사람들이 소설 남원산성 속의 사람들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어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야기는 저자의 전작소설남원산성 읽어야 개연과 구조를 이해할 있다.  영파와 요동 그리고, 남원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동부와 조선의 넓은 무대에서, 이신방과 저자의 내적 시선은 항상 남원을 향한다.  역사적 사실을 통한 정해진 결말을 위해 달린다.  안에 이신방의 생애 전체를 사로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대한 연민, 주변을 대하는 인간적인 성품이 인간을 깊고 두텁게 상상하게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모르는 인간의 묘사가, 그것 그대로의 인간이었을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소설은 매우 영화적이다.  마치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같다.  그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러나, 그만큼 읽기 쉽고 이해가 어렵지 않다.  묘사 하나하나가 영화적이어서, 읽으면서 순간마다 스펙타클한 영화의 장면처럼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심리적 묘사 역시 단단하다.  전작 남원산성과 맞물리는 부분도 있어서 퍼즐을 맞추어가며 읽는 재미도 있다.  저자는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왜국에 싸워 삼천 병사들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나는 이신방이라는 인물의 영화적 환생이라고 생각했다.  결이 조금 다르지만, 이역만리 남원성에서 목숨을 버려야만 했던 명나라 장수의 보이지 않는 인간미를 재구성함으로 예를 갖춘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모든 인물들은 연민과 애정을 가슴에 담고 사는 평범한 인간들임을 이야기한다.  두텁지 않은 작은 소설 안에 이신방이라는 인물이 깊고 탄탄한 인간의 모습으로 환생한다.  아주 재미지고 조금 가슴아프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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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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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경험이자 사소한 만남이었다.  대학시절을 보낸 그 도시 중심가의 지하 주차장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 주차장을 만드는 공사장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나의 삽질은, 흔적도 없는데다 나의 기억마저도 가물거릴 정도로 사소해졌다.  사무실 어두운 벽 안쪽에 걸린 안전모를 받아드는 순간, 수많은 누군가들의 땀냄새가 고정끈에 겹겹이 배어 코를 찔렀다.  한시간 연장 작업을 감독하던 조폭같은 인상의 정장 아저씨는 한 쪽에 쭈그리고 앉아 나의 어설픈 삽질에 인상을 찡그렸다.  5천원이 일당에서 추가로 더해졌다.  모든 것은 젊은 날의 사소하고 가벼운 경험으로 추억되었다. 

  진료실에서 만난 그도 별다른 무게감없이 사소하게 지나갔다.  몇날 며칠을 바다에 떠서 작업하는 배를 타는 그는, 세상 모든 것에 의심과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통증이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스스로 단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어째서 부당한지 스스로 단정했고, 자신을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닌지 따져 물었다.  입에서는 술냄새가 풍겼고, 몸에서는 비린내가 났으며, 옷깃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배어 있었다.  그것들이 그가 배 위에서 하는 일의 고단함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고단함의 무게만큼 존중받지 못했고, 내 기억에서도 사소하게 지나갔다.

  세상은 사소한 일들로 유지되고 굴러간다.  20여 년 전 일이긴 하지만, 일당 5만원에서 소개비 5천원을 떼이고 한 시간 추가노동 수당 5천원으로 그 도시의 지하주차장은 건설되었다.  그것이 학생이었던 나 뿐만 아니라, 김 씨 이 씨로 불리던 수많은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식초때문에 입이 얼얼한 오이냉국과 싸구려 빵 맛으로 기억하는 현실이었다.  우리가 밥상에서 종종 만나는 생선구이는, 세상을 믿지 않는 그가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손이 부르터가며 끌어올린 그물에서 비롯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여유롭게 차를 몰아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으로 생선 살을 집어 올려 맛을 품평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은 너무도 사소해서 의식조차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소한 사람들의 처지와 현실은, 그들의 노동으로 굴러가는 세상을 누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처지와 현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사소해져서 서로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사소함에 일부러 인식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서로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누리려 하면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려 하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열악함에 상처받을까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좀 더 좋은 것을 바라보려는 욕심 때문일 수도 있고, 서로가 얽힌 사소한 현실을 또다시 의식해야 한다는 부담이나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착취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일상적이고 오래도록 유지되는 이유는 서로의 사소함을 바라보지도 공감하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10여 년이 지난 이야기들이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도 굳이 많은 것이 달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변한 것이 있다면, 사소함 속에 존재하던 부당함들을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관심이 없거나 침묵한다.  부당함은 어쩔 수 없음이나 당연함으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몸을 움직인다.  세상엔 일상적이지만 알고나면 충격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 책이 말하는 저자의 경험들은 ‘알고나면 충격적인 일들’이지만 실은 보편적인 우리의 삶이자, 사소하지만 가벼울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그저 흥미거리로 전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 경험의 끄트머리마다 저자가 보여주는 극단의 행위들에 비판이 아닌 무거운 침묵을 머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경험으로 써내려간 글은 힘이 있다.  내가 집중하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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