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의 전설 - 인간과 사자의 공존을 꿈꾸는 사람들
브렌트 스타펠캄프 지음, 남종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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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7월 28일, 전 세계 언론은 한 사자의 처참한 죽음을 알린다.  짐바브웨  황게 국립야생공원 내에서 살고 있던 사자 세실이었다.  미국의 치과의사 월터 팔머는 우리 돈으로 약 6천만원을 내고 합법적인 사냥 패키지를 구입했다.  사냥 가이드인 테오 브롱크허스트는 죽은 코끼리고기를 야생국립공원 경계 바로 바깥에 두고 사자를 기다렸다.  옆에서 같이 기다리던 월터 팔머는 사자가 나타나자 미리 장전해 둔 석궁을 쏘았다.  사자는 바로 죽지 않았다.  놀라 도망을 갔지만 출혈이 심해 뒤쫓은 인간들에 바로 추격당했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 수풀 안에서 목숨을 잃는다.  2015년 7월 2일이었다.    


  사자를 죽이고 난 후에 가이드는 당황해 한다.  목에 걸린 GPS 감시기 때문이었다.  사자의 목과 가죽을 재빨리 처리하고 월터를 먼저 보냈다.  그는 감시기를 나무가지에 걸어 둔 후, 몇 시간 후 다른 이를 보내 감시기를 들고 주변 반경 몇 킬로 이내를 걷게 했다.  사자의 행적을 가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2015년 7월 4일, 감시기를 철로에서 부수어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죽인 사자는 국립공원 관리인들과 수많은 연구원들의 관심을 받고 있던 사자 세실임이 드러난다.  월터 팔머의 사냥 목적은 단순했다.  트로피 헌팅이었다. 


  세실의 죽음은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상당한 변화를 주었고, 그들이 함부로 목숨을 빼앗기지 않도록 제도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관심을 받는 대상이 이미 사라진 후에야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여전하지만, 다시 우리는 그거라도 다행이다라는 뒤늦은 후회를 반복한다.  그리고, 합법이라는 근거로, 테오 브롱크허스트는 무죄선고를 받았고, 미국인이었던 월터 팔머는 기소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단지,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어 그는 운영하던 치과를 닫을 수 밖에 없었을 뿐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바라볼 때, 크게 두 가지 시선으로 나뉜다.  동물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와, 인간과 동물은 공존이 가능한가.  여기서는 주로 야생동물을 의미한다.  시선은 쉽지 않다.  월터 팔머의 목적은 취미였기 때문에, 그의 행위를 포함한 트로피 헌팅 자체를 비난하기는 아주 쉽다.  단순히 존재의 목숨을 재미로 빼앗는 행위는 비도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재미나 여흥으로 야생동물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인간이 정한 합법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말이다.  당장의 나 자신만 해도 낚시가 취미이다.  얼마나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필요한 만큼만’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인 기준이지 알 수 없다.  수십마리를 낚아올려 과시하는 모습이나, 바늘을 물고 올라온 작은 물고기들을 귀찮다며 내동댕이치는 낚시꾼들에 대한 양심적 불편함 정도에서 머물 뿐이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문제는 내가 사는 섬에서도 자주 고민된다.  노루의 증가로 밭작물이 피해를 보니 보호종은 어느새 유해조수가 되어 사냥을 통해 무분별하게 개체조절을 당한다.  이 책에서도 이 문제는 깊이 다루어진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자가 무리를 떠나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인간의 마을이었다.  가축들을 습격함으로 배고픔을 해결하면, 그것은 습성으로 굳어진다.  인간과 사자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다.  야생동물 관리원들이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사자나 야생동물의 활동영역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생존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생긴다.  다른 종과는 확연하게 구분되어 버린 인간의 생존방식이 생태계의 관점에서 정당한가, 그리고 인간의 생존방식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야생동물의 침입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고민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순환공간을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난제이다.  


  짐바브웨 황게 국립야생공원에서 사자의 생태를 모니터링하는 연구원의 이야기이다.  그는 세실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세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자를 연구하면서 생태계 전반을 이야기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난제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한다.  세실을 잃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세실 이후에 세상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비중있게 서술했다.  세실을 죽인 월터 팔머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가 읽힌다.  하나의 사건이 우리에 주는 전환과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건의 전개과정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어디에 있으며,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상식은 무엇인가 고민해 본다.  동시에, 사건을 통해서만 깨닫는 인간의 변하지 않는 어리석음까지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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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다고 말해도 돼 - 마음에 서툰 당신에게 건네는 마음닥터 권명환의 작은 편지들
권명환 지음 / 호밀밭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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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타인의 모습에 최대한 다가가되, 적절한 간격을 두고 곁에 서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타인의 어떤 처지와 감정에 공감하되, 나는 온전히 타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인간은 서로 관계하되, 각자의 온전한 영역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바탕으로 차려진 예의이다.  


  인간의 관계와 개인의 영역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이를 인식하고 실행하거나 주장해 온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꼰대라고 표현되는, 함부로 타인의 영역을 넘어서고 그것이 실례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아직도 많음에서 알 수 있다.  반대로, 우리는 관계와 영역의, 사회적이거나 개인 또는 심리적 의미를 아직 잘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꼰대가 아니어도, 은연 중에 타인에게 불편이나 상처를 주고, 필요한 개인의 테두리를 가꾸는데 어설프기도 하다.


  서툴다는 표현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우리에겐 이미, 서툴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는 수많은 위로가 있다.  좀 더 서툴지 않을 수 있는 방법과 조언도 많다.  이미 많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여전히 변하지 않거나, 접근의 방식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  관계와 영역의 문제에서는 아마도 전자의 경우가 해당될 것이다.  수많은 위로와 조언은 각자의 방식으로 적절하게 주어지지만, 우리는 여전히 조언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데에 서툴다.  서툴어서, 인간은 자체로 서툰 존재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서툰 존재로서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서툴다고 솔직해지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인격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조언들 중에 선택한 이 책은, 포근한 공간 안에 공간에 어울리는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자와 눈을 마주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약간의 철학과 심리학의 개념을 담은 정신과적 기법으로, 서툴기만 한 관계와 영역의 고민들을 부드럽고 포근하게 다독인다.  쉽게 읽힐만큼 편안하고 매끄럽지만, 약간의 예민을 더하자면 사회적 상식으로 굳어지는 요소들을 반복한다는 데 있어 평범함도 없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의 반복은, 여전히 쉽게 변화하지 않는 사회의 반증이다.  몸담은 분야의 기법을 떠나, 좀 더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아 깊이를 만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평범한 조언 속에서 어렵지 않게 소소한 깨달음을 얻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용의 평범은 적절함 내지 저자의 의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의료인들의 이야기가 엮여 책으로 나오는 일이 많아졌다.  둘러보면, 병원 안의 이야기는 병원 밖의 사람들에게 극적 드라마같은 긴장과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따져보면 그것이 내 주변의 이야기로는 힘들고 부담스럽다.  대부분이 타인의 고통일 수 밖에 없는 병원 안의 이야기는 거리가 멀기에 마주하기 좋다.  그러나, 정신과 의료인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좀 더 보편적 관점에서 우리가 잘 느끼지 못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경우를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또는 관계 속에서 크고 작게 느껴왔던 어떤 기분이나 감정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덜 극적이지만 우리의 보편 안에서 작게 파도치는 심리와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를 좀 더 평온하고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반가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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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나는 누구입니까 - 사할린 강제징용 가족의 수난과 극복
박승의 지음 / 구름바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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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은 혼란의 시작이었다.  혼란은 누군가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인민들에겐 고난의 반복이었다.  한반도의 내부에서는 자칫하면 목숨이 오갈 수 있는 이념갈등의 아수라장이었다.  외부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 의해 처지가 결정되어 버리는 정체성의 아수라장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정체성의 문제는 가볍지 않다.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현실의 문제가 달라졌다.  해방이후 일본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남북한 또는 일본 어디에도 적을 둘 수 없었던 한인들의 명칭은 재일조선인이다.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으로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평온을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안착, 누군가에겐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한게 주어지는 그것을, 평생에 걸쳐 갈구해야 하는 삶을 강요당하는 이의 시선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사할린의 박승의 역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마음의 안착을 평생 동안 갈구하며 살아야 했다.


  정체성의 문제는 중요하다.  남한이라는 국가와 민족적 정체성 안에서 나고 자란 나 자신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그것을 평생 짐처럼 깨닫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간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서경식은 미술과 문학 그리고 정치사상적 관점에서 정체성의 문제를 수준높게 이끌어낸다.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인 조성윤은 일제강점기 시절 남양군도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어쩔 수 없었던 정착생활로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를 되짚는다.  ‘피부색깔 꿀색’의 전정식은 북유럽으로 보내어진 한인 입양아들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심지어 자살까지 이르게 만드는 정체성의 문제는, 나와 같이 안정적 테두리 안에서 살아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문제이다.  


  다시 사할린의 박승의에게 돌아가자.  그는 일제 강점기 당시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당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일본국적을 지닌 조선인으로 출생한다.  해방이 되었지만 소련당국에 억류된 조선인으로 아버지의 고향에 돌아올 수 없었다.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남북으로 나뉘었고, 아버지의 고향은 무주였다.  소련과 북한당국에 의해 국적선택 종용을 받았지만 고향에 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무국적 조선인으로 살게 했다.  이후 박승의 자신은 북한 공민과 소련 국적자, 이후 러시아 연방 국민에 이어 현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영구 귀국하여 살고 있다.  그는 일어, 러시아어, 한국어 세 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국적의 변화만으로도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파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의 파도와 그가 구사하는 언어들이, 그가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대신 짐작케 해 준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구냐?’란 질문에 대답할 때 머리가 터질 지경으로 혼란스럽다.  


  한 인간이 국적 바깥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시공간의 흐름 안에서 다양하다.  해방 전후 조선인이 한반도 외의 지역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에는 아픔이 있었고, 정치적 격동에 의해 강제된 비극이 있었다.  그것이, 재외교포 1세대나 2세대에겐 국가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었을 것 같다.  이후를 살아가는 3세대 이후의 사람들이 그런 면에서 희박한 모습은 어쩔 수 없으면서, 환경이 인간을 규정하는 어떤 진리를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박승의는 그런 면에서 사할린의 후대 한인들에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정체성과 환경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면에서 아쉬움은 답없는 개인의 안타까움일 뿐이다.


  한 인간의 살아온 내력 안에서 우리는 역사를 읽는다.  그것은, 격동이라 표현되는 한반도와 그 주변의 정세 안에서는 극적인 드라마와 같다.  그래서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하고, 역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우리에게 또다른 중요한 의미가 된다.  박승의는 자신의 삶 안에 역사적 의미의 결코 가늘지 않은 한 축을 담아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한반도에 사는 한인으로 우리가 잘 몰랐던 한인의 또다른 역사가 책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스스로 머리가 터지도록 정체성을 고민했고, 우리는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역사적 정체성을 그에게로부터 물려받아야 할 의무가 생겼다.  정체성은 인간의 생존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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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핀 수련전 - 남원성 사람들
고형권 지음 / 구름바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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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을 중심으로, 시선은 입체적이면서 언제나 낮은 고도를 유지한다.  이번엔 한물장군과 아내 수련의 이야기이다.  한물장군의 출생내력이 정유재란 남원성의 전투와 명나라 장수 이신방의 이야기 속에 얽혀 하나의 이야기로 뻗어나온다.  한 여인의 연정이 끝내 결실을 맺고, 아프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을 흘린다.  결실은 수련이 되어 한물의 옆에서 다시 결실을 맺고 장렬하게 시든다.  얽혀있지만 성가심이 아닌 포근함이고, 비극이지만 평범하되 아름답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낮게 흐른다.  전쟁은 갑옷을 두른 장수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호미와 쟁기질을 하고 산과 들을 다니던 민중들이 치루어야 했음을 보여준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이 아닌, 그저 삶과 터전에 대한 사랑이 그들을 나서게 했음을 이야기한다.  전쟁과 긴장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교류했고, 제도와 관습의 벽을 두고도 저항의 움직임은 그 위를 넘나들었다.  감정의 끝에 아픔은 짙고 깊게 남았다.  저항의 끝은 실패와 희생이었다.  그럼에도, 무언가는 남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의미와 모습들을 이어간다.  모든 것을 넘어선 보편의 인간사, 민중의 삶 그 자체이다.  


  저자는 이야기의 의도를 미리 건네어 준다.  민중의 보편의 삶이 가지는 무게,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시공간을 넘어선 고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는 본문을 통해 이야기한다.  ‘백성은 하늘이지만, 백성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선언같은 이 한 마디 안에 저자가 의도한 비극은 분명히 드러난다.  희망은 분명 우리에게 있지만, 우리는 쉽게 세상의 축을 부러뜨리지 못한다는, 시공간을 넘어서는 현실의 진실을 아프게 드러낸다.  그리고, 소설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얽힌 실타래의 이야기들이 실 하나하나를 타다 결국엔 하나로 모여 비극이라는 아픈 결말에 다다른다.  


  현실은 증명한다.  백성은 하늘이지만, 백성을 하늘같이 받든 권력은 없었다.  백성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도 증명되고 있다.  저자의 의도에 비추어 보면, 남원성 사람들은 실 한오라기조차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을 제 목숨을 내주면서 지키고 만들려 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목숨까지 내놓을 일은 없이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저마다의 해법으로 스스로 분열하고 싸운다.  이야기의 깊이와 감동을 넘어, 글쓴이가 소설 안에서 드러낸 어떤 바람은, 현재 안에서 어떻게 스며들고 있을까?  시리즈로 구성되어가는 이야기의 직조가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를 탄탄하게 뭉쳐낸다.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와 닿는 문체와 내용이 쉽게 빠져들면서도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어렵지 않게 이입된다.  닳지 않고, 꾸준하게 거친 길을 구르는 바퀴와도 같다.  그러나, 첫 장의 작가의 말은, 남원성을 읽어 온 한 독자로 하여금 군더더기같은 고민을 턱, 어깨에 짐지운다.  그래서, 계속 나올 거라는 남원성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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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코뮤니즘 실험 우리가 함께 만드는 세상 1
비니 아담착 지음, 윤예지 그림, 조대연 옮김 / 고래가그랬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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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즘(communism)을 공산주의로 해석하자면, 자본가 계급이 소멸되고,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되어 생산수단을 공공 소유하는 무계급 사회조직을 의미한다.  하위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분파들을 따지자면 복잡하겠지만, 큰 틀로서의 의미는 이러하다.  반면 사회주의(Socialism)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나 소수 관리를 반대하고,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자원의 효율적이고 정당한 배분을 추구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코뮤니즘은 의미상 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사회체라는 점에서 이해가 다르다.  


  다시 코뮤니즘으로 돌아오자.  ‘communis’는 ‘함께하는’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이고, 소문자로 시작되는 ‘communism’은 공산주의 체제 국가의 정경체제,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의미하고, 대문자로 시작되는 ‘Communism’은 공산주의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에 나와 있듯이, 코뮤니즘은 인류역사에서 실현된 적이 없다고 보면, communism은 인간 역사에서 실패하거나 실패 중인 사회체제이며, Communism은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선 이론 또는 이상적 종점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비판에서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구조적이며 어쩔 수 없이 내재한 문제들로부터 시작해서, 그것들을 개선해 나감으로 코뮤니즘의 이상에 가까이 다가서려 노력한다.  물론, 자본주의의 악을 완벽히 없애는 일은 쉽지 않다.  하나하나 개선해나가면서 발견되고 경험하는 또다른 문제들에 좌절하거나 후퇴한다.  그 과정은 아직 우리가 가 닿지 못한 Communism에의 막연한 동경이 아니다.  communis라는 의미 자체에 무게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 행동하면서 발견하는 고민들, 그것은 사실 우리가 산업혁명 이후의 인간의 역사 안에서 발견했던 모습들이다.  


  인간의 근현대사에서 보아왔던 원칙적 고민들을 간결하게 확인하고 나면, 또다른 고민이 생긴다.  우리는 어째서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신자유주의로 인한 분배균형의 악화와 몇 번의 대몰락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마치 책 속의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면서 이게 옳은 것인가 고민하듯 말이다.  그러나, 누구도 알 수는 없다.  자본주의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많이 있음을 자각하고 그것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인식만 공감할 뿐이다.  공감하는 인식을 출발점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걸음을 시작한다.  책 속의 사람들이 코뮤니즘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그 중 하나의 걸음일 뿐이다.  공감된 인식 외에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것은, 좀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보는 상상력이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역사 안에서 보아왔던 더 나은 세상으로의 노력과 실패를 아주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담아 표현했다.  따라서, 큰 틀이나 뼈대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른들에게도 유용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악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코뮤니즘의 실패 원인 중의 하나, 인간의 필요욕구를 효율적으로 자극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역사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인가?’ 라는 물음이 빠진 자본주의의 향유는 인간을 어리석게 만든다.  이 책은 이 물음을 진지하게 받아들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결론이 공산주의냐는 질문은 사양한다.  책 속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우리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런 우매한 질문을 하지 않을 정도의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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