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에 대하여 -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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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로 시작된 양국의 무역전쟁 이후로, 갈등은 광범위한 불매운동을 거쳐 전면적 양상을 보인다.  시작은 아베 정권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우경화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응은 정부 자체의 신속한 움직임도 있었지만, 국민들이 나서 불매운동을 주도하는 신선한 현상을 보였다.  한반도 갈등과 미국의 지원을 토대로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하려는 일본의 우경화 세력과, 남북관계 해소와 이를 통해 대륙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확장을 도모하는 남한의 정권은 이해관계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동시대라는 수평관계에서 바라보자면 그렇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역사성이라는 수직관계에서 현상을 바라보자면, 무역 전쟁은 일본 우경화 세력이 반발하며 벌인 치졸한 반응이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의 반일 불매운동은 감정의 면에서 이 부분에 많은 뿌리를 두고 있다.  현상은 조금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불매운동만을 놓고 보면, 수직의 관계에 깊은 뿌리를 두고 내재한 감정의 문제가 수평의 관계에서 폭발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감정의 문제라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불매운동의 전개과정과 모습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불매운동은 이성과 양심에 기인한 개인의 판단과 참여의 문제이다.  그러나, 운동은 집단적 강요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본산 신차에 대한 테러라던가, 한국에 진출한 일본 브랜드의 마녀사냥 등등은 ‘참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얻거나 국민이 아니’라는 식의 강요가 내재해 있음을 드러낸다.  사실 현대의 시대에서 불매운동은 상징성을 떠나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자본은 국경을 자유로이 넘어다니고, 계급은 자유로운 자본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형성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 일본제품의 불매운동은 상징성을 넘어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한국의 불매운동으로 인해 일본기업과 경제가 받은 피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다만, 한국내 일본기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의 어려움이나 일본제품을 구매했다가 피해를 본 사례만 넘쳐났다.  시간이 흐르고, 자본의 흐름 위에서 편리나 자유를 느끼던 사람들은 점점 불매운동의 어떤 강박과 강요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양상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반일 불매운동을 벌이는 걸까 생각해보면, 결국 이성보다는 감정의 문제에 더 집착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보면, 우리는 감정의 문제를 떠나 이성을 의식했던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을 의식하면서 당장 대립관계에 있는 ‘일본을 잘 알고 있는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점점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사회와, 일본사회 속의 국민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그리고, 생각들을 직조하고 틀을 세우는 일본 지식인들의 생각과 말들은 어떠한지 우리는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지피지기’라는 의미에서 불매운동은 전략 자체가 허술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 피해자나, 징용공, 위안부 문제들, 그리고 현재의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나 후쿠시마 피해자들 등등, 이런 문제들이 일본 내에서 어떤 논리에 부유하고 있는지, 어째서 그들은 전범책임의 사과나 보상에서 뻔뻔하기만 한지, 현재의 시점에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경화되어가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위안부와 징용공 문제, 독도 문제, 그리고 무역전쟁과 군사적 도발 등을 노골적으로 표면화 시키는데도, 어째서 사회내부의 비판적 관점은 적은지 살펴야 한다.  일본 좌파와 리버럴들의 전도된 논리와 소소한 침묵이, 이런 문제들과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덮어두고 있는지를 이 책은 깊게 설명한다.  


  ‘제국의 위안부’ 논쟁은 일본을 이해하려는 한국 내 지적 노력이 자칫 일본의 책임을 회피하는데 은근히 일조하는 일본 리버럴들의 논리에 지지하거나 휘말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이 부분에서도 상세히 언급한다.  다카하시 데쓰야의 지적대로 일본에는 소거해야 할 ‘일독’이 있듯, 우리에게는 정제되지 못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 보았다.  문명 일본은 전범의 책임자이자, 동아시아 갈등으로 입지를 구축하려는 반평화적 문제아이다.  그런 일본을 상대함에 있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앞선다는 것 역시 분명한 문제가 있다.  이번 반일불매운동을 비롯하여, 독도문제나, 정대협을 위시한 위안부 해결문제들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돌아본다.  감정의 문제가 이성의 판단을 압도하면, 상대를 알려고 노력하는 여러 노력들은 수많은 논리의 수 안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일본 내부를 직시하고 비판하는 좌파적 입장에서 이루어진 대담이다.  일본의 솔직하고 객관적인 다양한 이야기를 더 들어야 일본을 좀 더 알 수 있을 거라 말할 수 있겠지만, 엮인 책으로서는 가장 최근의 일본을 말한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아주 돋보인다.  일본 내부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한반도의 독자로서 비판의 이면에 깔린 ‘우리를 돌아봄’이라는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민한다.  한국과 일본의 인민간의 연대와 공감은 불가능한 것인가.. 이미 많은 연대의 형식이 존재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소거되지 않은 일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인민의 연대는 상황에 쉽게 흔들린다.  인민의 힘은 불매운동이나 반성에의 무감에 부역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에 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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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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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단지 얼굴에 주근깨가 있고없고 정도의 의미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는 유태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뒤틀린 존재의 자각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생존의 문제로 발버둥쳐야 했고 죽음의 문턱을 경험해야만 했다.  프리모 레비는 그렇게 죽음에 가까운 생존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을 매우 강렬하게 자각해야 했다.  그 과정은 철저하게 타의적이지만, 각인되기 시작한 정체성은 선조들의 역사부터 거슬러올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기율표의 한 원소에 그들의 삶을 담아 서술한다.  오해와 배척의 역사는 그가 살던 시대의 현재에 이르러 나찌에 의한 존재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나찌의 유태인 차별정책은 프리모 레비를 주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제도적 강제 자체가 아니었다.  정책이후 사람들의 자발적인 심리적 변화 때문이었다.  


  주기율표는 화학자이면서도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독특한 서술 때문에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소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받은 몇 가지 대목이 있다.  일차로 그가 겪은 극한의 수용소 생활은 그의 다른 책에서도 상세하게 서술되고 있으니 주기율표를 이야기하는 이 자리에서는 옆으로 미루어 둔다.  다른 부분으로는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찌 점령 이후 주변에서 서서히 격리되어가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가 생존하여 화학회사에서 일할 때, 거래하던 독일회사의 담당자가 수용소시절 자신을 담당했던 관리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이다.  


  나찌의 유태인 차별정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태인들에게 낙인을 찍게 만들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성적 권리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사실 사람들은 앞서서 내세우는 선동에 매우 취약하다.  선동에 의한 시선과 인식의 변화는 결국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 스스로 다른 인간을 배제시킨다.  자신이 속한 영역 바깥으로 몰아낸 사람들은, 영역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마음껏 비난한다.  그렇게 내몰린 프리모 레비는 죽음의 경계에서 분투해야 했던 수용소 생활에서 운좋게 살아난다.  그리고, 일상에 복귀해서 일하다가 우연히 수용소 시절의 자신의 독일인 관리자와 연락이 닿는다.  관리자는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프리모 레비에게 자신의 행위를 판결해주길 요청한다.  프리모 레비는 여기서 양가적 감정에 휩싸인다.  양심적인 독일인 개인의 행위에 대한 자신의 용서가능성과, 나찌가 건설한 유태인 수용소의 잔혹성에 일조한 독일인들의 책임과 반성의 가능성..  그러나 이 고민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독일인 관리자는 만날 약속을 해 두고는 약속날짜 며칠 전 사망하고 만다.  


  그는 스스로를 죽음에 가까운 인간이라 규정한다.  그 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스스로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만 했고, 가까웠던 지인들의 수없는 죽음을 불가항력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생존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는 화학자였지만, 증언자이자 작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드러내며 인간 실존과 심리의 문제를 극한의 영역까지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그는 자살했다.  자살의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생존의 극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가 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자살은 단지 정신병적 결과만이 아닌, 인간의지의 한 극단으로 해석된다.  그렇게 바라볼 때, 극한의 경험을 겪은 이가 어떤 심리와 의지로 다시 극단의 선택을 했는지, 인간의 이성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유태인을 디아스포라적 시선으로 바라본 디아스포라 재일조선인 서경식은 이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품고 프리모 레비의 집과 그의 발자취를 따라나서지만 그 역시 알 수 없는 의문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원소의 흐름에 따라 프리모 레비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정체성의 고민은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대목으로 가지를 치고, 자신이 겪은 극한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생존과 실존의 고민이 적당한 깊이로 이어진다.  우연히 살아남은 자가 트라우마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는, 그래서 보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실존의 고민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작업은, 글쓴이의 괴로움이자 읽는 이의 행운이다.  프리모 레비의 저작들로 인하여, 인간은 좀 더 이성적이고 보편적 사고를 펼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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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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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글이란 무엇인가.  써야 할 글이 마땅치 않을 때, 나는 문득 이 질문을 던진다.  본질을 겨냥하는 질문은 말문을 막히게 하는 힘이 있다.  질문에 답이 없다면 그것으로 상황은 유리하게 정리된다.  글은 쓰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쓰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다시 묻는다.  그러다 결국 상대방의 손에 들린 머그컵이 내 이마를 향해 날아오는 일이 벌어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마의 작은 상처 하나로 상황은 나에게 유리하게 정리될 수 있다.


  노트북을 사 달라고 조르는 아들녀석에게 ‘노트북이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려 했었다.  이제 초등학교를 마칠 나이의 녀석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건, 노트북을 사주지 않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아니면, 엄마 키를 훌쩍 넘어서고 배둘레가 나와 비슷해진 육중한 몸으로 노트북을 사 줄 때까지 벌일 육탄전을 감내하겠다는 의지이다.  노트북의 본질도 모르는 녀석에게 노트북을 사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잠시 고민했다.  이내 고민을 접고 모든 귀찮음을 포기한 나는, 몇가지 다른 질문과 조건을 달아 녀석에게 노트북을 장만해 주었다.  본질에의 질문은 의지의 확고함을 드러내지만,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아늑하고 포근하게 변화한다.  자본주의에의 비판의식과 본질에의 고민따위 집어치우고, 마트에 들어가 큼직한 카트를 양 손으로 미는 순간 소비의 환락과 편리의 아늑함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것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나는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내가 쓰는 글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진다.  답은 없었다.  주제도 목적도 내용도 무엇 하나 분명치 못하고 흐릿하지만, 끊임없이 쓰는 수 밖에 없었다.  만들어진 글이 엉성해도,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아도 나는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글의 쓰레기를 꾸준하게 만들다 보니, 어느새 쓰레기 산이 되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종이에 쓰지 않아 썩는 악취가 나지 않고, 신용카드 두 장 크기의 작은 외장하드에 자그맣게 담겨 누군가의 보행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글이 내가 사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나는 글을 계속 쓸 것이다.  어설프고 엉성하지만, 그것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고 다듬어 나를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에 오랜 시간동안 눈치 안보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집근처 까페에 앉아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데, 옆 계단에서 배우 정우성씨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 나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자신과 빼닮은 누군가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길래 궁금해서 와 봤다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지금 쓰고 있는 문장들을 조금 보여주니 약간 표정이 굳어지면서, 이런 애매한 글 따위 집어치우고 자기랑 같이 티비에 나가자고 했다.  나는 티비에 얼굴을 드러내도 괜찮을 만큼 당신과 빼닮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웃을 때 눈이 사라지고 당신처럼 입꼬리가 매력적으로 올라가지도 않는다며 사양했다.  그러자, 정우성씨는 작은 한숨을 쉬더니 그럼 할 수 없다며, 자신과 닮은 사람은 맞으니 글 좀 잘 써서 두 사람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올라왔던 계단으로 사라졌다.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정우성 이미지에 기여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로 갑자기 바뀌어 자판을 두드리던 손을 잠시 멈추었는데, 사라졌던 정우성씨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는 ‘그런 글을 기다리느니 내가 당장 도플갱어같은 당신을 없애버리는 것이 더 낫겠소.’ 라며, 영화 비트에서 보여주었던 날렵한 주먹질로 내 턱을 후려갈겼다.  갑자기 눈 앞에 까페 천장이 펼쳐지더니 우측 뒤통수로 무언가 둔탁한 것이 부딫히는 느낌이 들며 내 시야는 어두워졌다.  그러고 나는 꿈에서 깨었다.  자판 위로 침이 흐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가를 추스리고, 나는 두드리던 자판을 이어 두드리며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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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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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경험이 없는 내가 전쟁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살아남은 자가 입 또는 글로 표현하는 경험 또는 트라우마는 ‘내가 죽거나 다칠 일은 없다’는 일종의 위안을 기반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약간의 낭만마저 더해질 수 있는 풍경이 되기도 한다.  트라우마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트라우마의 원인 또는 근원이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증언하되, 듣는 자는 수용의 한계를 보인다.  그 과정에서 가려지는 것과 회자되지 못하는 것들이 발생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경험된 전쟁은 그런 범주에 속했음을, 저자는 증명한다.  


  어깨에 총을 매면 개머리판이 땅에 끌릴 정도로 작은 소녀들이 애국심에 취해 전쟁에 지원을 했다.  2차 대전 시기의 소련이라면 어쩌면 가능한 일이겠다 싶지만, 그런 자발적 애국심은 어떤 기반에서 비롯되는지 의문이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기록에는, 어린 소녀들이 생각하는 전쟁에는 낭만의 요소가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총탄과 포탄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전투기의 기총소사에 옆에 있던 전우들이 픽픽 쓰러지는 처참함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된 여성들이기에 담담하게 말해질 수 있는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고 용감하게 전쟁에 나섰다.  전장의 주어진 제 위치에서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살아남은 여성들은 증언했다.  전쟁은 여성성을 집어 삼켰다.  전쟁은 복장에서부터 역할까지, 남성이기를 강요했다.  말하자면, 전쟁은 애국심을 바탕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고, 집어삼켜지는 여성성을 지키기 위한 처절이었다.  한껏 소녀감성으로 생의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야 했던 여성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행군 중에 첫 생리가 터지고, 전쟁의 참화 안에서 생리가 멈추며, 전쟁이 끝나면 자신은 더 이상 여성으로 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과 걱정은 여성의 정체성 역시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삶의 요소임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그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는 전쟁이 여자가 아닌 남자의 입을 통해서 설명되기를 강요당한다.  전쟁 속에서 누이라 불리며 깊은 동지애를 나누던 여자들은, 전쟁이 끝나고 거칠고 위험한 여자라는 낙인이 찍히며 결혼 대상에서 배제된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까지 소련당국의 무거운 검열과 거친 압박을 받는다.  전쟁은 처절함과 생존의 싸움이 아닌, 위대한 승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협박으로 말이다.  


  전쟁의 포연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하고 오밀조밀한 일들이 여성의 시선으로 설명된다.  처참과 비참이 두텁게 깔리면서도, 사이사이로 보여지는 여성의 섬세함과 아기자기함.  4년 만에 입어보는 원피스가 너무도 어색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누군가의 증언처럼, 사소함은 때론 지키기 어려운 소중한 무엇이었다.  전쟁은 오로지 남자의 것이 아니었다.  전쟁 안에서도 사랑은 흘렀고, 입영 열차에 메고 갈 가방에 사탕을 한 가득 넣었듯 순수함이 있었으며, 빨간 스카프를 포기하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소녀감성이 있었다.  전쟁에는 약자나 피해자가 아닌 인간 그 자체의 여성이 존재했고, 전쟁은 남성의 무용담이나 호기로움으로만 말할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이 흐르던 시공간이었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어떻게 설명되고 회자되어야 하는가는 중요하다.  여성의 시선은, 가장 객관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설명한다.  그것이, 전쟁을 설명하려는 권력과 남성이 여성을 배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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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의사들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함께한 한국 보건의료운동 30년
최규진 지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 / 이데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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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의 업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거리를 느끼는 일이었다.  언제나 제 3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그렇다.  방관의 편리함을 즐기는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함께하지 못함의 불편함이었다.  의사의 업을 유지하며 살아갈수록, 전자보다는 후자의 무게가 더 커졌다.  의료 역시, 세상을 구성하는 큰 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함께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부에서 보면, 의사들은 완벽한 콩가루들이다.  뭔가 이상한 의료제도 안에서 한없이 분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처럼 생각하기를 거부한 사람들 같다.  생각없이, 선동과 인기투표로 내세운 의협회장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딱 그 수준의 선동과 어쩔 수 없는 정치적 무능을 드러내 보인다.  의사가 세상의 흐름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에 거부당하고 내쳐짐을 선택한 형국이다.  그리고, 의료는 스스로의 정치적 선택에 걸맞게, 힘없이 정부의 포퓰리즘에 휘둘리며 망가지는 중이다.  이 거대한 무능과 처참은 장막이 되어 어떻게 세상에 동참할 것인가의 고민을 매우 힘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내 주변엔 세상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헌신하는 의사들이 있다.  철저하게 개인이 되어 힘들게 싸우는 이들의 곁에 머무른다는 것은, 각자의 희생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념을 져버리지 않는다.  가끔 집회현장에 나가고, 소심하게 후원이나 하는 안일하고 게으른 나 따위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 같다.  그러면서도 떠오르는 생각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일이 합리적이고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뭔가 조직적으로 그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며 돌볼 수 있는 의료집단들이 만들어지거나 나설 수는 없는 것일까 고민이 들었다.  나 하나만의 생각은 확장하기를 주저했다.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와, 주변에 그런 고민을 나눌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광우병 촛불집회때, 주말마다 노란조끼를 입고 의료봉사단으로 활동했었다.  내가 인의협을 목격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 단체가 있는 줄도 몰랐고, 그들은 사복차림으로 오갔기에 알 방법도 없었다.  우리 말고도 의료지원에 나선 집단이 있었구나, 깨달았지만 그 뿐이었다.  연락이나 다가갈 방법도 알지 못했다.  인의협은 조금 먼 느낌이었다.  같은 의사임에도, 저들은 조금 달라보이고 나와는 틀려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의사집단 안에서도, 직접 알아보려 노력하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나의 게으름 때문인지, 의사집단 내에서 인의협의 어떤 위치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인의협은 지금도 조금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30년의 역사를 책으로 펴냈다.  같은 의사이지만 조금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 다행인 것은 책을 읽으며 그들의 활동을 알게 되었고, 세상의 거친 파도 안에서 의사로서 결코 가볍지 않은 역할들을 해 왔구나 하는 사실에 위안을 받고 안도감을 얻는다.  콩가루 한줌 속 존재일 뿐이면서도, 무기력과 게으름이 꼭 내 탓만은 아니라는 위로도 조금 받는다.  그러나, 뭐랄까..  여전히 조금 멀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30년의 역사안에서 그들의 활동은 소소하거나 친근함과는 달리 묵직하고 거대했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 역시, 도심의 조그만 의원에서 하루종일 환자나 보고 있는 나와는 많이 달라보인다.  내가 그들의 흐름에 작은 줄기로 동참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되려 무거워진다.  이제 막 인의협에 후원도 시작했다.  가입하면서 둘러 본 인의협 사이트 역시 ‘나는 의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다.  위로에 이어 작은 벽이 느껴짐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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