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56
올더스 헉슬리 지음, 정홍택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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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공되어 태어나는 인간사회, 계급과 역할의 통제와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당연시함으로서 만족과 행복감만을 느끼게 되는 세상.  감정과 이성이라는 인간의 가장 근본을 통제하는 세상은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끔찍하거나(독자의 입장), 만족스러울(통치자의 입장)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가공된 인간들은 당연함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스스로의 생각이 통제된 이성과 감정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일은 억압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의 만족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기제라면 억압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함이란 존재할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매트릭스 안에서의 시선이 마치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연함을 가지듯 말이다.  


  통제의 방법이 구사하는 매트릭스의 세상은 올더스 헉슬리가 묘사하는 이 책과 조지오웰의 1984 가 대표적이다.  1984는 끊임없는 외부의 위협요소를 만들어내어 감시와 억압을 자행하는 미래인 반면, 멋진 신세계는 인간의 출생자체에서부터 이성을 통제하는 미래이다.  따라서 1984의 계급은 권력을 바탕으로 하는 후천적 획득요소라 하면, 멋진 신세계의 계급은 생체조절을 통한 선천적 획득요소이다.  그러다보니 물론 당연한 현상이긴 하겠지만, 1984년의 시선은 감시와 억압을 피하고자 하는 매트릭스 내의 구성원의 시선으로 전개되고, 멋진 신세계는 생체통제에 이상이 있었던 상위계급과 생체통제력의 외부에서 생활하는 야만인이라는 매트릭스 바깥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두 개의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내 느낌은 당연히 답답함이다.  두 소설이 묘사하는 미래는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아 미래같지 않은 원시적이고 때로는 구차해보이는 묘사도 있어 그렇긴 하지만, 전체적인 인간사회의 모습은 어떠한 형태로든 통제이고 통제에 의한 비인간성 때문에 답답함이 밀려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가 그려내는 선천적 통제의 세상에 살아가는 이들이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는 점에서 사뭇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나의 입장에서 답답하고 괴롭고 이해하지 못할 기분과 감정들이 복잡하게 엃혀있기에 들게 되는 상대적 현상이다.  게다가 나 역시 어떤 뭔가가 잘못된 매트릭스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세상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과 존엄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세상이고, 혹시 그것이 어떤 매트릭스 내의 현상이라면 우리는 잘못된 매트릭스를 깨고 시선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지만, 고민과 과정이 주는 괴로움과 답답함은 소설에 대한 엉뚱한 생각을 가지게 한다. 


  야만인이라 표현되는 이의 자살..  그것은 통제가 당연화된 세상이 어떤 물리적 강요가 아닌 자연적인 흐름안에서 이루어진 질식이다.  결말은 비관적이지만, 통제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겐 낙관이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비관적인가 낙관적인가 하는 수많은 것들이 뒤섞인 입장에의 고민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매트릭스에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한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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