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네
유동훈 글.사진 / 낮은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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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서 외롭고 소외받는 이들을 위로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가진자의 자선, 복지제도의 도움, 또는 막연한 사회구성원들의 관심.. 많은 것들이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다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정작 위로가 되는 것은 같은 처지의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들끼리 어울려 나누고 다투고 위로하며 공감하고 교류함으로 서로를 감싸안는다.  물론 자본의 마수가 덜 닿는 지점으로 모일 수 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그들은 그들끼리 모이는 건지도 모른다. 
 

  같은 그들만이 줄 수 있는 위로와 공감, 그것은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절절함과 어려움을 알 수 없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슬프다, 절절하다, 아련하다 등의 감성의 나열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감동적이다라는 식의 거리감을 전제로 하는 표현 역시 하고 싶지 않다.  나로써는 스스로 찾아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가난의 아픔, 그들의 외로움, 스스로 삶을 일구어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하루하루의 생활,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나가는 공동체의 꿈이 있기 때문이다.  제도의 틀에 적응하고 제도 안에서 먹고살아가는 데에 지장이 없어 더 이상의 생각도 고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들의 삶을 어떤 알량한 수사나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 대한 무례이며 또다른 폭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가난의 풍경에서 우울함과 감상만 드러내지 않는다.  가난의 풍경을 주변으로 어울려 뛰노는 아이들 속에서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그리기도 하고, 자본과 권력에 의해 무참히 뜯겨나가 줄어들기만 하는 판자촌 동네에서 여전히 비가 새는 지붕을 메우러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스팔트 귀퉁이 갈라진 틈에서 기어이 올라오고 마는 민들레같은 강인하고 영속적인 인간의 삶을 그리기도 한다.  가난한 동네의 비좁은 지붕틈을 타고 들어온 햇빛을 받고 앉아있는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깊이있는 연륜을 느끼고, 공동체 안 작은학교에 모여 놀고 공부하는 아이들의 미소와 성장의 모습에서 제도의 틀에 갇혀 시들어가는 다른 아이들에게서와는 다른, 싱싱하고 강인한 희망을 바라본다.

 

  무게감있는 사진과 글들 속에서 저자는 언뜻언뜻 자신의 생각을 내비친다.  그것은 판자촌 어떤동네의 사람들이 돈 많이 벌어 좋은집,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거나, 동네아이들이 좋은 학교 좋은 성적으로 세상의 어떤 기득의 자리를 차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스스로 가난해져 이들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꿈이다.  자발적 가난, 어려우면서도 이제는 거의 모든것이 파괴된 한정된 지구안에서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만 하는 삶의 모습이다.  어떤 사상과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며,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않는 공동체를 꾸려가고 유지하며 삶을 그려내는 저자의 사는 모습이 너무도 존경스럽다.  나에게는 여전히 두려움이란 틀에 갇혀 다가갈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그네들의 삶,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기에 책을 덮고 난 순간은 스스로 부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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