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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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사랑스러운 책, 주주. 책 밑의 띠지에 쓰인 설명을 읽지 않는다면 '주주'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주인공 이름인가 했다.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인기 작가 중 한명인 요시모토 바나나가 쓴 작품이라고 하니 읽기도 전에 책 표지만 보아도 너무 설레였다. 이 책은 165페이지의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의 소설이다. 밝고 경쾌한 표지의 하드커버가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의 소설을 감싸고 있어서 손에 착 감기는 것이 여름 휴가를 떠나는 여행자들의 손에 들리면 딱 좋을 법한 책이다. 기차 안에서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며, 혹은 비행기에서 읽으면 딱 기분좋게 책 한권을 마무리할 수 있을 법한 두께이다. 일상을 다루었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내용과 안정감이 느껴지는 문체에 읽는 이의 마음을 예쁘게 다독다독여주는 느낌이 드는 책이라고나 할까?

이 책은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그 상실을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매일 매일 겪어내는 일상의 힘과 반복의 힘, 그리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엮어내는 삶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능력을 보여 준다. 미쓰코는 최근 엄마를 잃었다. 엄마는 젊은 시절 아빠와 만나 사랑에 빠졌고, 시아버지가 운영하던 햄버그 가게를 이어받아 남편과 함께 평생 햄버그 가게를 운영한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는 가게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가는 연습을 하는 미쓰코의 이야기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된다. 할아버지, 아빠, 그리고 이제 미쓰코까지 삼대째 이어오는 햄버그 가게에는 단골 손님이 많다.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마야사카씨 부부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마야사키씨 부인도 세상을 떠나고, 서점 운영을 돕기 위해 아들이 동네로 돌아오며 새로운 사람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플롯은 단순하지만, 작가의 필력 때문인건지 혹은 평범한 이야기가 전해주는 힘이 있어서 그런건지 이 소설은 이상하게 굉장히 단단하다는 느낌을 준다.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왜 그러한 느낌을 받았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그건 이 소설의 주인공들 모두의 삶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가족형태가 아닐지라도),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연속성 때문이 아닌건지 싶다. 미쓰코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햄버그 가게의 냄새를 맡으며 자라왔다. 아버지는 자신만의 특별한 요리법을 가미하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 왔던 그대로 햄버그 맛을 유지하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해 왔다. 엄마도 남편의 옆에서 자신만이 가진 특유의 발랄함과 따뜻함으로 햄버그 가게를 채웠고,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주인공 미쓰코는 어머니가 해왔던 방식을 따라가면서도 자신이 가진 캐릭터 그대로 가게를 운영해 나간다. 그리고 친척이라고 해야 할지, 양자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사람인 신이치도 아버지를 도와 주방장 일을 맡으며, 언젠가 아버지가 떠나면 주방을 이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마야사카씨 또한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서점을 부모님의 방식 그대로, 그러나 그만의 방식을 약간 가미하여 어머니가 떠나간 자리를 또 채우고 있다. 이렇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답답해 보이리 만큼이나 할아버지가, 그리고 부모님이 지키셨던 자리를 그대로 지켜나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것에 대한 조금의 의문도 혹은 부담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가지지 않는다. 부모님을 기억하며, 그렇게 꾸준하게 그 자리를 지켜 나간다. 이게 어쩌면 일본을 지탱해 나가는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는 힘, 그 뿌리에 무언가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특별함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리를 지켜 나가는 힘. 그리고 그렇게 하루 하루 일상을 쌓아나가는 속에서 무언가 특별함이 쌓여가고, 이야기가 만들어 지고, 사람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각자 모두 다르겠지만, 영영 내가 속한 곳을 떠나려고 시작하는 여정을 우리는 여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돌아올 곳을 생각하고, 돌아갈 곳을 염두해 두고 있을 때 여행이라고 얘기한다. 여행을 떠나며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가 여행지를 생각하며 설레는 이유가 돌아갈 나의 집이 있고, 이어나가야 할 나만의 삶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음 깊숙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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