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 책 옆에 책 1
이수은 지음 / 스윙밴드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지하철에 몸을 싣고, 사무실에 앉자마자 인스턴트 블랙 커피를 위에 급하게 쏟아 넣어야지만 눈빛이 그나마 살아나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도 안가지만 한 때 나도 문학소녀(?)를 꿈꾸던 풋풋한 대학 신입생 시절이 있었다. 대학 입학 후 설레는 마음으로 교내 학생회관 서점에 가서 나는 **대 필독도서 목록을 정리해 놓은 책을 한권 샀다. 요즘도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 다니던 그 옛날(?)에는 대학교 출판부에서 필독도서 100선인가 무언가 했던 제목의 책을 팔았다. 목록을 보니 그동안 여기저기서 들어봤던 온갖 고전 목록들이 올라와 있는데, 정말 읽어보고 싶은 책은 단 한권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대학 졸업 때 쯤에는 빛나는 지성인이 되어 그 목록의 대부분(90%정도?)은 읽게 되겠거니 했다. 물론 그 목록의 대부분(95%정도?)을 못 읽고 졸업했다(안 읽은 것일 수도 있다). 

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몇년이 흘렀는지 딱히 헤아리고 싶지도 않지만, 아무튼 그 긴 시간동안 역시나 고전이라고 이름 붙은 책은 거의 1년에 1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다.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면 고전이 전시되어 있는 섹션에 가서 한번 펼쳐보기는 하지만 나의 저급한 문해력으로는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왠지 언젠가는 읽어봐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의 부담을 주는게 고전이 가진 유일무이한 매력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고전에 대한 부채의식을 항상 갖고 있는 나에게 역시나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라는 제목은 눈에 금방 들어왔다. 누구나 그렇듯 책을 고를 때는 저자소개를 주의깊게 보는 편인데 여러 면에서 저자 소개에 끌렸다. 첫째 저자가 여성이다. 나는 여성 저자를 아주아주 편애하기 때문에 저자가 여성이라는 점이 우선 확 끌렸다. 둘째 저자의 이력이 특이했다. 유학한 곳이 네덜란드인 것도, 유럽중세사라는 전공도 모두 특이하게 느껴졌다. 셋째 19년이라는 꽤 긴 시간동안 책을 만지는 일을 했다는 것이 좋았다. 책을 좋아하니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책을 만지는 일을 했을 것이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쓴 책에 관한 책이라니 너무 읽고 싶어졌다. 

책을 읽어보니 저자 분께서 독자에게 정확하게, 그러면서 효율적으로 책을 정리하여 보여주시려고 노력한 것이 많이 느껴졌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강의도 듣고, 책을 읽을 기회가 많은데 그 때 고전이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그 고전에 대한 줄거리나 배경지식이 없으면 엄청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부지기수인데 이렇게 전문가가 잘 설명해 놓은 요약본을 통해서 배움의 징검다리로 활용하는 것도 삶의 지혜인 것 같다. 물론 직접 읽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이런 책을 활용하여 나의 배움의 저변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렇게 전문가의 가이드를 통해서 훑어 본 책 중에서 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책이라면 직접 읽어 볼 수도 있는게 아니겠는가?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이 있는 사유, 폭넓은 식견은 제쳐두고, 우선 책에 관한 요긴한 책이 되고자 한다. 그 쓸모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책의 내용을 이만큼만 알아도 그 책이 한결 친숙해질 것이고, 심각한 고전을 읽는다는 부담과 두려움도 덜어질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읽다가 고전의 숲으로 본격 원정을 떠나볼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내가 딱 저자의 말처럼 본격 원정을 떠날 마음이 생겼다. 나는 문학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범인이 그나마 접근 가능한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시는 천재의 영역이라 그런지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이 너무 많다). 책의 저자가 소개한 책들 중 저자의 특별한 애정이 느껴지는 작품은 [이방인]이었다. 나는 사실 제목만 익숙할 뿐 내용은 전혀 모르는데, 저자가 이 책을 소개한 부분이 나로 하여금 꼭 이 책은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어릴 적 책장에 꽂혀 있던 전집 세트에서 [데카메론]이나 [분노의 포도]를 꺼내 심심풀이로 들춰보긴 했지만, 이것들을 다 제대로 읽어보자, 결심하게 된 것은 [이방인]을 읽고나서였다. 말하자면 [이방인]은 나에게 문학의 힘을 인식하게 해준 첫 책이었다. 그 후 여러 고전을 읽었고 직접 편집해본 작품도 더러 있지만 나에게 변함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언제나 [이방인]이다. 어째 좀 부적절한 표현 같아도 이게 정확하다. 이 책을 평생 한 번도 안 읽는 사람은 있어도 딱 한 번만 읽는 사람은 없다.

시중에 고전을 요약해서 설명해 놓은 책이 많지만, 이 책은 저자의 책에 대한 사랑이 구석구석에서 배어 나와서 좋았다.  확실히 진심이라는 것은 직접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활자가 적힌 종이를 통해서도 전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의 표지에는 "책 옆에 책 1"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 책이 2편, 3편 시리즈로 계속 제작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고전을 잘 설명해 주는 좋은 책이 계속 나온다면 고전을 어려워하는 평범한 독자에게는 너무 반가운 소식이다. 나처럼 고전을 읽고 싶지만, 길잡이가 필요한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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