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다니엘 튜더 지음, 김재성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주변의 많은 이들이 외로움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외로움을 잊고 살았었다. 반려자가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갓 태어나 24시간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아이들 덕분이었다. 아이들은 내게 외로울 틈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외로울 시간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들이 자라서 내 곁을 떠나가자 다시 외로움이 찾아왔다. 심리학 시간에 배운 '텅 빈 둥우리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는 1982년 생으로 만 나이로 아직은 30대의 한창 활동하는 시기의 화려한 싱글이다. 과연 그가 외로울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러한 궁금증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방인들은 외로움이라는 숙명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다니엘 튜더는 한국에서는 파란눈의 이방인이지만 정작 영국에서도 달라진 억양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방인 특유의 외로움이 아닌 다른 이유로 그는 이 글들을 썼을 것이다. 일단 그의 책을 읽으면서 첫 느낌은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이 많이 둥글둥글해졌다는 점이다. 2013년에 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의 그는 매우 날카로운 시선을 지녔었다. 그도 그 점을 언급하고 있다. 그 이후의 책은 읽지 않아서 모르겠다. 물론 글의 주제가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에서 그의 시선은 훨씬 따뜻하다.
그가 아는 어느 유튜버에게 빠진 여자가 그 유튜버가 사는 도시로 이사오고 그에게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접근하려고 하자 그 유튜버는 그의 영상에서 다른 도시로 이사갔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일화를 예로 든 글이 있다. 우리는 핸드폰의 영상에 나온 이들의 모습을 1:1로 대면하면서 그 사람과 나와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고, 위에서 언급한 여자는 그러한 착각 속에서 그 유튜버와 혼자만의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고 결은 다르지만, 그의 이번 글은 그의 내면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위의 일화를 말하면서 '준사회적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크리스 스토클워커가 준사회적 관계가 지금처럼 강렬히 나타난 적은 없었으며, 그러한 관계는 위험하다고 한 말을 인용하지만, 오히려 요즘 같은 외로움의 시대에 오히려 열등한 대체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 글을 쓴 시점은 모르겠지만, 작년부터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강제적으로 비대면 시대를 살게 되었다.이제 준사회적 관계는 저자가 말한 열등한 대체물이 아니라 우월한 대체물이 된 것 같다. 슬픈 현실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게 편하다. 긴 수다는 아주 하기 싫은 집안 일을 할 때, 지루하지 않게 해주고 일의 효율을 높여준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은 카톡 대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카톡을 보내고, 나는 그 카톡을 받으면 전화를 한다. 카톡으로는 대화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무엇보다 손가락이 아프다. 나는 얼마 전에 나보다 5살 어린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도 통화를 하지 않고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채팅을 한다고 했다. 놀랍게도 이 책의 처음 부분에 그러한 내용이 나온다.
저자는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또래나 더 젊은 세대는 이제 전화 통화를 끔찍이 싫어한다." 아마 '피차 불편한데 말 섞지 맙시다'와 같은 불편함 때문일 것이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불편해서 오히려 배달앱이 인기이고, 말하지 않는 기사를 요청할 수 있는 우버 블랙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보다 더 젊은 세대의 성향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더 나이든 세대가 되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그러한 불편함을 감내하고서라도 낯선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 편견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그곳의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인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을 선호하며,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들 했다. 언론에서도 혼밥, 혼술 등의 모습을 자주 노출시키곤 했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의 위험때문에 개인간의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서로의 만남을 규제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비접촉 정책을 견디지 못하고 접촉으로 인한 감염자를 꾸준히 발생시키고 있다. 젊은이들의 활동성 때문에 접촉으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백신 투여를 먼저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아직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더 다가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서로의 외로움을 나누면 그 외로움이 더 줄어들 것이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를 통해 한국 사회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책에서 그가 부재했었다면, 이 책,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 있다. 저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나의 내면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외로운 존재이지만, 지금 더 외로운 시기를 살아내고 있다. 모두가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