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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죽음 - 생의 끝에서도 삶의 품격을 잃지 않는 지혜
능인 지음 / 불광출판사 / 2026년 10월
평점 :
<단정한 죽음>을 어제 완독했다. 제목처럼 단정한 책 매무새 그리고 정제된 글. 어떤 긴 말보다 더 잔잔하고 깊은 감동이 있었다. 영적 돌봄가로서 수많은 ’죽어감‘의 곁을 지켰던 살아있는 경험들로 채워져있었기 때문이리라. 특히 남겨진 여섯살 딸아이가 엄마의 죽음을 버텨내는 장면, 남겨진 어린 아들 둘과 남편에게 영상편지를 남기는 젊은 엄마의 이야기는 유독 눈에 밟혀 눈물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첫 페이지에 이렇게 초록색 글자로 사색해볼만한 글귀들이 적혀있다. 화두 삼아 명상해보아도 좋겠다.
사실 지난주 언벅싱 후기를 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처음이자 유일한 명리선생님이신 강헌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선생님이 명리공부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도 40대에 발병한 대동맥 70cm박리였으니 그가 살아난 것 자체로도 기적이었고, 그 후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로 무기한 시한부 인생을 살고 계신 셈이었다. 그런 선생님이 진짜 가셨다.
그렇지만 이렇게 갑자기?
언제 가시더라도 이상할게 없는 그런 상황을 알지만, 많이 놀랐고 많이 아쉽고 가슴 한 구석 뻥 뚫린듯 허전하다.
10년전 나는 선생님의 네 번째 명리 수업에서 1년간 반장을 했다. ‘자기 사주에 사화 있는 사람 손들어봐라, 유금 있는 사람, 축토 있는 사람...’ 세번 다 손들어 ‘사유축’ 다있는 사람에 당첨됐다. 릴리쿰 내에서 방향을 잃고 뭔가 몰입할 곳이 필요했던지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재미도 있었다. 인생의 타임라인에서 1년은 짧다면 짧지만 나에겐 밀도있는 1년이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진하다.
그때도 한창 요가에(지금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로) 빠져있었다.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았던 체형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고 내적 혁명감(?)을 느꼈다. 이 때문에 자기 운명 역시 스스로 읽을줄 알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관점에 매료됐다. 그러나 명리를 공부할수록 나는 오행 철학의 한계를 느꼈고 명을 보는데에 있어 자기 수행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이어서 주역과 불교, 명상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됐다.
나는 부산으로 내려와 정과장이 됐고, 그 사이 선생님은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되어 계셨다. 나는 직함으로 불리는 것에 불편해하고 있었지만 시대의 자유 풍류인이신 선생님은 너무 잘하고 계신듯했다. 그 또한 선생님다웠다. 안부를 빙자해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아니 이게 무슨일이에요? 공무원이라니요? 어떻게 지내세요?” 했지만 속으로는 ‘선생님, 저 힘들어요 부산 괜히 내려온걸까요?‘하며 우물거렸다. 선생님은 “어떻게 좋은 것만 다 하겠노?” 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응석부리고 싶던 마음이 꿀떡 삼켜졌다. 그후로도 언젠가 내가 정말 힘이 들때 연락드리면 선생님이 들어주실거란 막연한 기대와 의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랬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허탈했던 이유가 그래서일까.
상황이 이럴진대 이 책이 내게 와있다. 선생님은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사신걸까 궁금해졌다. 생사고비를 몇번이나 거치고 나머지 인생은 마치 덤으로 얻은 것처럼 생각하셨을지. 아니다, 그마저도 상을 짓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패를 100% 아니, 200% 이상 실컷 쓰시고 가신 것 같다. 드라마 같은 삶을 사시고도 단 한번도 자신의 삶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셨기에.
사실 한번 태어난 이상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책은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이야기라 환자들의 이야기 뿐이지만 이렇게 병원 밖에서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선생님의 ’죽어감‘을 통해 생각해보게 된다. 병동의 환자들처럼 몇달, 몇년이 아니라 20여년이라는 시간이 선생님께는 덤으로 얻은 삶이자 자신만의 명랑한 ‘죽어감’이지 않았을까.
그 덤으로 얻은 시간 안에 나는 그 분을 만났다. 우리는 그 분을 만났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있다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본다.
📖책 속에서 P204
에필로그 _ 삶과 죽음 사이에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
... 나에게 ‘단정한 죽음’이란, 이 생에 초대되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을 바르게 정리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배려함으로써 ‘나다운’ 모슺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단정한 죽음은 단순히 죽음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품어 가느냐의 문제이며, 결국 우리 삶 전체를 아우르는 깊은 태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