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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최근 열흘 동안 읽은 책의 제 목이다. 제목처럼 오래 그곳에 남아 마지막 장을 넘기 며 손에서 놓기가 어려운 책이다. <나무의 시간>이라 는 책을 읽다가 뜻밖에 그 책으로부터 소개받은 걸 계 기로 여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읽으려고 아껴두던 책 인데 그냥, 읽어버렸다. 마지막 장을 넘기지 않았다. 첫 째아이가 아빠, 그 책 어제도 읽었잖아, 라고 할만큼 오 래 손에 들고 있다가 마지막 열 몇 장을 남기고 긴 여운 을 유지하려고 그랬다.
일본작가의 건축에 관한 책이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던한 분위기의 글이라고 소개받은 바, 바로 내 가 찾던 소설이었다. 소설이란 모름지기 발단과 전개, 절정과 위기 그리고 결말이 상호작용하는 형식을 따르 기 마련, 이 책 역시 이에 충실한 글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던한 글이라는 소개를 나는 필 자의 문장에서 ‘봉싯’ 느꼈다. 분량의 반 정도는 여러 건축물을 안팎으로 세밀하게 묘사한 장면들이다. 썩, 지루했다. 최근 건축에 관한 글에 관심이 많은 독자가 읽어도 그 장면들은 꽤나 지루했다. 서사가 아닌 서정 을 이렇게 늘어놓음으로써 무던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일조하면서도 그 안팎에서 서사의 구조를 서정의 틀에 맞추는 방식이 특이했다. 반 정도 쯤에서는 약간 의 로맨스도 있다. 이마저도 작가는 무던하게 풀어내는 데 참, 좋다. 언제고 여름에 또 찾게 될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아직 읽지 않고 있지만, 어쩌면 이 작가 는 ‘시절인연’에 관한 글을 남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 각해 본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남자는 건축학도로 본인 이 존경하던 선생님의 설계사무소에 입성해 마침 진행 하려던 프로젝트에서 소일거리를 맡으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동료들의 지인들과의 한 여름을 나면서 있었 던 일들을 겨울의 초입에서 마무리하며 그 소감과 회한 을 소스를 곁들이지 않은 감자요리처럼 담백하게 이야 기 한다. 소설이 제목처럼 여름에 머물지 않고 겨울에 들어서면서 끝을 맺은 걸 보면, 어느 한 시절 길고 뜨거 운 여름에 만난 인연들과의 추억을 곱씹기 위해 실제 배경들을 면밀히 묘사하는 기법을 빌려 지나온 시절에 인연을 두고 왔음을 알려 주는 듯하다.
여름에 두고 온 인연을 겨울에 그려본다, 남자는 마리 코와의 인연을 이어 갔을까,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그도 아니면 선생닝과의 인연을 잇기 위해 건축가로서의 독 립을 실현할 계획이라도? 여름이 가기 전 끝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