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시대
이청준 지음 / 물레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외동은 이제 그 약산댁의 따뜻한 심성이 지녀온 마 음의 빚덩이가 이제는 자신에게까지 옮겨진 듯 가슴속 이 훈훈해왔다. 게다가 제 가슴속 아픔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던 여자, … ,이미 그녀의 가슴속 아픔을 보아버린 외동은 약산댁이 그렇듯 아픈 상처를 지니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데에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고 따뜻 하게 느껴져 온 것이다. …’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 이청준 선생, 그의 사후에 출간된 마지막 장편소설인 <신화의 시대>을 읽고 있다. 이 작품은 세 번째 다시 읽는 중이다. 심신을 달래려 혹은 어질러진 감정선을 다시 추스르고 싶을 때 뽑아드는,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된 주제는 아니지만, 어느 한 구석을 관통 하는 소주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락이 있어 소개한다.
이 단락의 앞뒤 내용은 이렇다. 홀아비와 어렵게 살아 온 약산댁 그녀의 혼인 전날, 어려운 형편에 혼인식을 간소하게 치르자는 양가 어른들의 말씀이 있고 난 뒤였 지만 구경꾼일지라도 잔칫날 뭐라도 먹여 보내는 게 도 리인지라, 해물거리를 해오고자 갯가에 나갔는데 동네 아낙들이 그것을 보고 가여워 자신들의 갯거리를 조금 씩 나누어 주어 혼인 전날 뻘투성이를 면하게 해 준 은 혜를 잊지 않고 마음의 빚으로 남겨 두어 이담에 만난 열 살 연하의 새댁 외동댁에게 내리 갚아 그것에 감사 해하는, 외동댁과 약산댁의 훈훈한 갯가 장면이다.
나도 한때 이런 친구가 있었다. 타고난 외로운 심성을 알아봐 주고 그걸 드러낼 때에 더 마음을 놓고 다가와 준 고마운 친구가 나도 한때는,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들 을 하나 하나 보듬을 줄 아는 이였다. 그도그럴것이, 자 신도 어려운 한때에 연상의 동성에게서 받은 마음의 빚 이 있어, 그의 사후에 날 우연히 알게 되었고 한번 두번 만나보니 그 빚을 내리 갚고 싶어졌다는 고백을 해 오 던 날을 지금도 잊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 고백 뒤에 내 어깨쯤에 여운처럼 남았던 감정이 있었으니 그 감정이 세 번째 읽는 책의 어느 한 구절로부터 시리도 록 깊은 곳에서부터 10년이라는 세월로부터 나를 일깨 우기에, 어떤 증표처럼 글로써 이렇게나마 남긴다.

‘…아픈 상처를 지니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데에 이상 하게 마음이 놓이고 따뜻하게 느껴져 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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