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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 양녕대군 vs 태종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3
신명호 지음, 안희숙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평점 :

아버지의 왕위를 잇는 장자 세습을 따르고 있던 조선 왕조에서 왕자의 난으로 태종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태종의 맏아들 양녕 대군도 폐세자 되었고,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양녕 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양녕 대군에게 가했던 폐세자 조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로 읽어보면서 조선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양녕 대군은 태종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 때문에 반항아이자 비행 청소년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아버지인 태종이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자신의 잘못을 외면한 채 양녕 대군을 문제아이자 불량 세자로 몰아세우고 세자의 자리에서 내쫓았습니다. 조선 왕조 시대에 왕위 계승권자인 왕세자는 왕과 왕비에서 태어난 맏아들이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왕조 27명의 임금 중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했던것은 8명 뿐이였다고 합니다. 조선 왕실의 규범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여기에서 왕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많이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태종이 나쁜 아버지이자 무책임한 가장이였는지, 양녕대군은 문제아이자 불량 세자였는지, 양녕대군은 임금의 자질이 부족했는지,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 증인들의 증언과 양녕 대군과 태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태종이 양녕대군을 사랑해 주었다면 양녕대군은 비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양녕 대군의 이야기, 조선의 기틀을 잡기 위해 양녕 대군을 폐위했다고 주장하는 태종의 이야기, 충녕을 바라보는 태종의 눈빛은 정말 부드러웠을까요? 공부와 학문이 월등했던 충녕대군이 양녕을 대신해서 세자가 되었으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동생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넘겨준 양녕 대군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아보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된다고 좋은것만 있었을까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