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 - 홍봉주 vs 흥선대원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4
방상근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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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에는 신앙에 대한 믿음을 누구나 자유롭게 갖을 수 있지만, 조선 시대에는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유교적인 가치관과 천주교의 교리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고, 유교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천주교는 오랫동안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신앙의 자유도 얻게 되기는 했지만 천주교 신자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원고 홍봉주는 어려서부터 천주교를 접하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되었고,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을 도왔고, 베르뇌 주교를 모시고 살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홍봉주는 흥선 대원군을 상대로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 고소장을 내기로 합니다. 원고 측 변호사 나신상과 증인 정하상, 윤지충, 홍낙민, 김대건 신부까지 만날 수 있고, 피고 측에서는 변호사 조선왕과 증인으로 정순 왕후, 홍낙안, 이항로, 권돈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를 보면서 천주교 박해에 대한 각자의 주장을 들어보기로 합니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 대원군이 정치를 맡게 되었습니다. 천주교를 박해하고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희생시켰습니다. 대원군은 천주교를 올바른 학문이라고 인정하지 않았고, 법으로 금지했지만 국법을 어겨가면서 천주교를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사신들이 선교사로부터 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얻어 오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해, 신유, 기해, 병오, 병인 박해를 받은 100년간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최초의 조선인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는 점에서 병오박해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김대건 신부까지 증인으로 나와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들이 마카오에 개설한 '조선 신학교'에서 공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천주교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도 순교를 하였지만 서양 선교사들도 많이 순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박해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역사속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교과서 속 역사 이야기를 한국사법정에서 들여다보면 서로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바가 다르므로, 새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천주교를 무차별하게 탄압한 흥선 대원군이 행했던 천주교 박해가 왜 일어났는지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의 전래와 조선의 변화 천주교가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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