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노비가 있었을까? - 억울해 VS 나양반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0
손경희 지음, 이주한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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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잘 사는 사람도 있고,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잘 사는 양반과 못사는 양반, 그리고 돈 많은 잘 사는 평민이 돈을 주고 양반을 사기도 하고, 그 양반들의 집에서 일을 해 주는 노비들이 있었습니다. 양반들은 다섯 살 무렵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고, 양반들이 남긴 기록들을 통해서 조선 사회를 들여다 볼 수도 있었습니다. 양반들은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농사일 같은 경제 활동은 직접 하지 않았습니다. 노비들을 통해 해결하였고, 노비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노비가 되기도 했습니다.

부모를 잘못만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모가 노비이면 아이들도 노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노비였던 억울해는 말합니다. 신분을 떠나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에 반하여 나양반은 역사법정에서 양반은 사회 지도층으로서 그에 걸맞은 도덕적 책무를 지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사 법정에서 '왜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노비가 있었을까?'의 시작을 알립니다.

억울해는 태어날 때부터 나양반 집안의 노비가 되었습니다. 대대로 노비 집안은 아니였지만 아버지 때부터 노비가 되었습니다. 억울해의 아버지는 굶주림으로 시달리다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아서 떠돌아다니다가 나양반의 할아버지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유기아수양법'에 의해 아버지는 노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억울해의 아버지는 양인이였고, 대기근만 없었더라도 노비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 억울할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억울해의 억울함을 풀고 노비라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현대에 살아가는 아이들은 억울해와 같은 삶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 속의 억울해와 나양반의 삶을 보면서 역사를 배우게 될것 같습니다.

 

노비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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