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펼쳤을까? - 박규수 vs 흥선대원군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5
이정범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5월
평점 :

쇄국정책하면 흥선 대원군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무리하게 개혁을 추진하다가 지배 계층이었던 유림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쇄국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 문호를 열어 주고 조선의 사상과 문물, 제도를 새롭게 뜯어고쳐 근대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문호 개방의 기회를 놓쳐 결국 조선 왕조가 멸망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는 흥선 대원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이릅니다. 왜 흥선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펼쳤는지 한국사 법정에서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합니다.
이미 정조 임금 시대부터 조선에는 변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실학사상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습니다. 정조 임금이 죽고 열한 살의 어린 나이로 순조 임금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순조 임금의 할머니인 정순 왕후가 섭정을 했고, 안동 김씨들이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순조 임금마저 일찍 죽었고, 아들인 효명 세자도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헌종 임금이 겨우 여덟 살 때 왕위에 올라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헌종 임금마저 왕자를 낳지 못하고 일찍 죽었고, 강화도에 유배되어 살던 이원범을 데려와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철종입니다. 철종이 왕위에 있는 동안 흥선군은 방탕하게 지내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면서 안동 김씨의 감시를 벗어났습니다. 철종이 신정 왕후를 찾아가 둘째 아들인 재황을 다음 왕위에 앉히게 됩니다. 고종 임금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수렴청정을 해야 했고, 신정 왕후의 명으로 흥선군이 섭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흥선군은 천주교를 박해하고, 쇄국 정책을 펼친 것이 단지 정권을 유지하고 유림 세력의 지지를 받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이면서도 세계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정권에 연연해 대외 정책을 결정했다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흥선군은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할까요? 흥선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펼친것에는 그만의 생각이 있었겠지요. 흥선 대원군이 조선의 역사를 후퇴 시켰다는 박규수의 주장과 조선을 강한 나라로 세우고 싶었다는 흥선 대원군의 주장은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한국사 법정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