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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도 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을까? - 사도 세자 VS 영조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8
이종호 지음, 이일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8월
평점 :

정조시대에 건축했던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다녀오면서 화성행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했다는 뒤주를 보게 되었습니다. 실제 그 뒤주는 아니겠지만 아이들이 뒤주에 들어가 보면서 사도세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권력이라는것이 무엇인지 답답한 마음이 들더군요. 사도세자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는 권력과 관련된 내용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 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두 살의 나이에 세자 책봉이 되었습니다. 효장 세자가 세상을 떠나고, 후사가 없어 애를 태우던 영조가 일찍이 세자에 책봉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였을까요? 영조는 탕평책을 실시하여 당쟁을 없애려고 힘썼고, 속대전을 간행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임금이긴 하지만 아들인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갇혀서 죽게 만드는 잔인한 일도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고, 한국사 법정에서 아버지를 상대로 해서 소송을 해야하는 사도세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혜경궁 홍씨가 썼던 한중록에 사도세자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다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사도 세자는 이것 또한 억울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영조의 어린 세자에게 양위를 하겠다고 매번 석고대죄를 해야 했고, 열 다섯살때에는 대리청정까지 해야 했습니다. 왕을 대신해서 정치를 해 보는 것입니다. 대리청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울화증까지 생겼다고 하네요. 여기서 영조의 이야기도 자세하게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인현왕후, 희빈 장씨, 숙빈 최씨의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 않을까요? 영조는 숙빈 최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궁녀들의 심부름을 하던 무수리 출신의 최씨에게서 태어나서 영조는 더 많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숨막히는 법정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도 세자가 평양에 가서 평안도 관찰사인 정휘량을 만났고, 그가 소론이고, 세자와 사돈 관계에 있었다는데에 역모를 꾀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대로 변호사의 말을 들으니 맞는것도 같고...^^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생각 나네요. 아들 사도 세자를 죽인 비정한 아버지 영조의 이야기를 한국사 법정에서 만나게 되니 흥미로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