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났을까? - 김옥균 vs 민영익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8
이정범 지음, 이일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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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재미있는 그리고,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는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난것을 원고 김옥균과 나대로 변호사, 원고 측 증인 김흥집, 홍영식, 박영효

그리고, 피고 민영익과 임예리 변호사, 피고 측 증인 묄렌도르프, 명성 황후, 위안스카이와 함께

판사 공정한이 치열한 재판을 함께 하면서 공정한 판결이 이루어지는지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 4일, 김옥균 등 금진 개화파가 일으킨 정변으로 왕이 권력의 중심인 왕조국가

또는 전제주의 국가였습니다. 개화당 지식인들이 반대파 대신들을 죽이고 왕과 왕비를 인질로 삼아

정치 개혁을 벌이려고 했던 일이기 때문에 분명히 나라의 법을 어긴것입니다. 반역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는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반역자가 되었지만 얼마후에 반역자의 누명을 벗었고, 높은 벼슬까지

추증되었다고 합니다. 대역 죄인이 갑자기 정2품 벼슬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을까요? 명성 황후의

친정 식구들로 이루어진 민씨 정권은 부정부패와 백성들을 괴롭혔고,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청나라와 일본이 힘을 겨루면서 조선 정부는 청나라의 꼭두각시가 되고 맙니다. 이런때에 개화파가

정변을 꾀하게 되었고, 힘겹게 정권을 잡기는 했지만 삼일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책속에서는

김옥균이 정변을 일으킨 과정과 그의 삶, 조선의 상황 개화파로 활약하던 민영익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 등을 알아보기도 하고, 한국사법정에서 일어나는 김옥균과 민영익의 법정공방은 흥미로울것입니다.

 

 

재판 첫째 날에는 김옥균은 왜 갑신정변을 계획했을까? 재판 둘째 날에는 갑신정변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재판 셋째 날에는 갑신정변은 왜 실패했을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있는

열려라, 지식창고와 휴정 인터뷰를 통해서 역사를 알아갈 것입니다. 최후진술이 이어지고,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 벌어진 원고 김옥균이 피고 민영익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 훼손에

따른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정한 판사의 공정한 판결을 기대해 보세요...

떠나자, 체험 탐방에 나와 있는 체신 기념관과 우표 박물관도 찾아가보면 좋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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