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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처럼 거칠어도, 병인처럼 초라하고 석기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
이 책의 작가 반디가 책 권두에서 독자들에게 보낸 짧은 시 같은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글이 책의 본 내용을 읽기도 전에 공감이 갔기에 책을 손에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책을 읽고 나면 이 짧은 시 글에서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동의하는 부분은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뼈로 적은’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북한의 진실을 알게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처럼 거칠어도’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특히 ‘병인처럼 초라하고 석기처럼 미숙해도’의 표현은 더더욱 그렇고.
일반적으로 체제 비판적인 문학은 비록 문학성이 다소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주제가 주는 의미와 영향력, 그리고 상징성 등 때문에 가치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책도 그러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학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다소 어폐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소 주제가 한정적인 제약은 있지만 충분한 예술성을 지닌 작품으로 인정해도 될 만큼... 그렇기에 이 작품은 전혀 병인처럼 초라하지도 않고 석기처럼 미숙하지도 않다. 오히려 용기있게 진실을 밝히는 히어로의 이야기같고, 은유와 상징이 가득해서 잘 다듬어진 조각 작품처럼 울림이 있다.
나에게 가장 울림을 준 작품 중에 하나는 [무대]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세대간 갈등을 담은 이야기겠거니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의와 부조리, 진실과 거짓의 부딪힘이었다. 아들 경훈은 이렇게 외친다. “지금 저 조의장에선 벌써 석 달이나 배급을 못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헤매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경훈은 또 이렇게 말한다. “진실한 생활이란 자유로운 곳에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구요. 얼마나 처참해요.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들로 만들어 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경훈은 북한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아니 반디 작가가 경훈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속마음을, 아니 북한 주민들의 속마음을 쏟아낸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마음과는 상관없이 살아남기 위해 울어야 하는 북한 주민들의 그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이 책 ‘고발’을 덮으면서, 반디 작가의 원고가 남쪽으로 조용히 바람처럼 넘어왔듯이, 자유와 희망의 따뜻한 바람이 저 북쪽으로 스며들어가 그곳의 사람들이 차가운 겨울을 견뎌낸 사람만이 만끽할 수 있는 봄날을 맞이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