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있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언제나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하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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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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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기다림이 무엇인지 채 알기도 전에 그 속으로 뛰어들기를 선택했다. 날 때부터 사랑을 아는 자는 없다. 날 때부터 기다림을 아는 자는 없다. 알기도 전에 뛰어든 자만이 오직 그것을 아는 자가 될 수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이를 향한 긴 기다림은 사랑이 되었다.
병이 되었다.
사랑이고 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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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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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퍽퍽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됐고, 건강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 아름답거나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내가 쓰는 문장들이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실용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됐어. 그런 내가 좋지만, 때로는 내가 아주 융통성 없는 사람처럼, 단지 수천 수만 개의 비뚤어진 잣대들을 뭉쳐놓은 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 말을 잘 못하겠어, 진경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삶을 사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겁이 나서.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 그립고, 기분이 좋으면서 두려워. 내가 너한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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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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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만약 사람들이 항상 자기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우리 시민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자신들만 생각했다. 다시 말해, 재앙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본주의자들이었다.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인 것, 곧 지나가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재앙이 지나가버릴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사라지는 쪽은 사람들, 누구보다도 인본주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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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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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추억이라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그 상대를 대했던 자기 자신의 옛 자세를 반추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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